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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쿠버 한인 장로 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7-03-27 01:23:39
추천수 10
조회수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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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양원석 [가입일자 : ]

제목

벤쿠버 한인 장로 교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내용
내용
 
 


우리민족과 인듸안과의 관계





고조선 시대때 부터 우리주변에 있던 우리조상과 관련이 있던 민족들을 살펴보면 흉노숙신선비몽골말갈(발해주민), 여진만주족거란 동이족 왜구 그리고 중국의 한족등 많은 민족들이 서로 다투며 살아왔다이들 민족들이 시대에 따라 어디로 어떻게 인구가 이동하며 살었나를 연구한 역사학자 손성태 박사의 민족이동 연구논문을 소개하려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록된 역사시작은 BC 1세기 고조선시대(단군조선위만조선부터 시작되어 월삼국시대(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가야), 남북국시대(통일신라발해), 후삼국시대(신라후고구려후백제), 그리고 통일왕조시대(고려조션그리고나서 일제하에 갑오개혁을 거쳐 현대사회로 들어서게 된다우리선조들은 주변국으로부터 무려 993희의 침탈을 받었다고 하는데 그때 마다 노예로 끌려가고 아내와 딸을 빼앗기는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생존하고 있다. 중국 주변에 있던 수 많은 나라들은 거의 다 중국에 통합되어 나라는 물론 언어와 풍습 마져 중국에 동화되어 사라져 없어겼 는데 우리 민족과 몽고족만 중국에 먹히지 않고 나라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끈질긴 민족이다





     우리 선조들의 왕조가 흥망성쇄를 거치며 계속되는동안 중국 북쪽에서 가장 강력했던 국가 였던 부여와 고려려의 멸망과 그 후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연구가 흥미롭다


이들 두 나라는 힘이 없어 망한것이 아니라 내부 권력다툼으로  와해되었다.  부여는 주민들이 북쪽 춥지반도(오늘날 캄쟈카’ 쪽으로 계속이동하여 국력이 쇄퇴되어 장수왕때 부여왕이 항복해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그리고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죽자 그 아들 남생과 남건의 권력 다툼으로 고구려가 멸망하게 되었다이때 백성들이 당나라로 많이 끌려 갔지만 더많은 인구가 북쪽으로 이동을 하였고 나머지 인구가 신라에 복속 하게되였다. ‘춥지반도에서 온돌고구려인 ‘낚등 선조들의 유물이 다수발견되고 있다


숙신흉노등 다른종족들은 남쪽이나 동쪽으로 이동하였는데 유독 부여와 고구려 유민들만이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3세기-7세기동안 이지역에서 북으로 이동한 약 일천만 정도의 인구의 행방을 연구한 손셩태 박사의 논문에 의하면 이들이 북으로 이동하여 베링해엽을 건너 북미주에 자리잡은것이 인듸안 이라 하며 그 증거들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표하고 있다.





   ‘에스키모라는 이름은 그지역 원주민을 처음본 불란서 사람이지은 이름인데 아이에게 날생선을 먹인다는 우리말 아세끼먹여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하며 얼음집 이글루는 이것으로라는 우리말 변형어인 이걸루’ 라고한다.


그리고 캐나다미국멕시코 지역에서 살고있는 인디안들에게서 발견되는 우리의 말과풍습 그리고 아시아와 북미주가 연결되는 지역에서 발견되는 우리 조상들의 유물들은 에스키모와 인듸안들은 부여와 고구려인들의 유민이라는 확신을 갖게한다.





   많은 인디안 부족의 이름에서 우리말의 흔적을 찾아 볼수있는데미대륙 동쪽 오대호 부근에 살고있는 제일 큰 인듸안 종족 이름이 집에와족이고 두번째로 큰 나도왔수족은 아리조나타코타지역과 멕시코 지역에 사는 종족이다.


노우스 와 사우스 게로라이나에는 어서와족 갓다와족이 살고 있으며북미주 서쪽으로가면 또왔나족과 기어와족도 있다


시아틀과 벤쿠버지역에 사는 인디안들의 축제 이름이 또만나요이며 캐나다의 주 이름중 매니토바주는  ‘많이또봐’ 라는 인듸안 언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이지역에서 들소를 사냥하며 사는 종족을 치페와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집에와종족의 변형된 이름이라고한다.





   종족의 이름뿐만아니라 이들 일부 인디안들에게서는 우리와 같은 특유의풍습들이 많이 발견된다놀이에는 우리의 자치기’, ‘굴렁쇄’, ‘공기놀이가 우리와 똑같으며 애기나면 치는 금줄창포에 머리감는것달속에 비친 토끼한마리등도 우리와 같은풍습을 갖고있는 것이 많이 발견되었다이밖에도 신부의 연지곤지 찍는것가체머리등 우리와 같은풍습이 수없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인듸안 선교지 방문에 앞서  인듸안과 관련된 역사적 연구결과를 접하게되어 소개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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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승헌 2017-03-27 11:27:42
답글

문자가 없었을 때의 역사는 거의 신화에 가깝고, 사실관계 확인할 방법이 별로 없다고 봅니다.

글중에 "아세끼먹여", "이걸루"는 솔직히 갖다 맞춰도 너무 황당해 보이네요.

우리나라가 작지만 원래는 큰나라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것은 이해가 되지만, 영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이전의 역사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초한 것이고, 이또한 중국의 영향이 많이 들어갔다고 봅니다.

위만조선, 기자조선도 알려진 것에 의하면 중국에서 도망와서 위만과 기자를 세웠으니, 결국 우리민족은 중국혈통이다라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위만조선, 기자조선도 결국 중국의 영향에 의해 조작되었을 수 있고, 사실은 단지 고조선의 내부싸움에 의해 위만과 기자로 바뀌었을 뿐(고려에서 이성계 쿠데타로 조선으로 바뀌듯) 중국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세운것은 아니었다고 믿고 싶네요.

황준승 2017-03-27 12:09:52
답글

일단 인디언 언어가 우리나 터키와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yws213@empal.com 2017-03-27 16:19:14
답글

부승현님, 그 내용은 손성태박사님이 현장에 가서 확인한 내용입니다.
어거지가 아닌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한 우리 세대는 그야말로
조작 범벅이 된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고 봅니다.
직접 동영상 강의나 관련 자료를 자세히 보시지 않았으면 한번 쯤 보셔야죠.
1500년대 이전 지구의 대륙지도도 살펴 보시고요.
말을 안장 없이 가장 잘 타던 사람들은 동북아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이 얼마나 많았으면 말의 갈기나 꼬리털로 갓을 만들고 살았을까요? ^^
한 가지 더 천군만마라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지요.
고구려 벽화에서 보듯 그 시대에 말을 안장 없이 길들여서 타고 자유자재로 활을 쏠 수 있는
기마부대를 운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나라였답니다.

황준승 2017-03-27 17:15:04
답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고구려인들은 왜 안장 없이 말을 탔을까요?
안장을 만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안장을 만들 줄을 몰랐던 것인지요?
말 안장을 사용하면 전투력이 향상되는 건 사실이잖아요.
안장 없이 말을 제대로 탈 수가 있는지, 탄다 하더라도 제대로 전투가 가능할런지요?

말의 털로 갓을 만들어 쓰고 다니게 된 시기는 조선시대 때부터라고 알고 있는데요.
조선시대 때도 말이 많았나요?
고려 때 몽골군이 제주에 조랑말을 많이 풀어 놓았다고 들었는데,
조선시대 때는 제주에서 갓을 만들어 육지로 내다 팔았다고 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시대에 상류층이나 양반계층에서 주로 갓을 쓰고 다녔을테니
갓의 수요가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국민들 대다수가 갓을 쓰고 지냈다면 말이 아주 많이 필요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고려 때라면 모르겠지만 조선 때는 초기 세종 때 이후로는 정복사업도 변변히 하지 못했을테고
산이 많은 지형에서 굳이 기마병들이 많이 필요 했을까요?
말이 농사에 소 만큼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테고, 말을 먹이려해도 넓은 초원지대가 필요할텐데요.

부승헌 2017-03-27 18:44:27
답글

원석님, 우리가 배운 역사는 사실 조작범벅이 된 것이라는 것 저도 인정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모든 역사는 진실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승자의 전리품식으로 조작되어 기술된 것이다라는 것이 맞을 겁니다.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서 후에 동족을 당나라 불러들여 점령했다는 소리 듣기 싫어 의자왕을 둘도없는 색골로 만들었고, 궁에 들어가지도 못할 만큼의 삼천궁녀를 만들어 냈지요.(의자왕이라는 시호는 의롭고 자애롭다의 뜻인 만큼 의자왕의 인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천궁녀는 후세에 와서 소설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진실로 알고 있습니다.)

쿠테타로 집권한 이성계는 조금이나마 자기의 정통성을 갖기 위해 고려말기를 부정부패로 썩었다고 했을 것이고, 조선때 발생한 인조반정등의 사건도 일종의 쿠데타로 집권하고 나서 그 왕은 폐위시키고 했지 말입니다. 예전에 많은 왕들이 폐도를 했을터인데 반정으로 폐위된 왕은 유난히 못된사람으로 평가된 것이 그 이유입니다. 광해군도 최근에 재평가 되고 있습니다만...

여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단지 우리나라만을 국한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제대로 된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너무나 조작되거나 과장된 것이 많다는 것에 동감합니다.

그런 주입식 역사관에 의해 비판의식이 전혀 들어가지 않으면 틀린 것도 진실이라고 믿게 되고 결국은 요즘의 태국기부대와 같은 부류와 다름이 없을 수 있겠지요.

이전에는 스스로 알려고 해도 알 방법이 없으니 국가가 가르쳐주는것이 진실로 믿을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으므로 스스로 찾아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정말 진정한 역사인가 하는 것을 공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덕분에 역사공부 하게 되어 즐겁습니다.

yws213@empal.com 2017-03-27 20:57:22
답글

준승님, 맨 처음엔 말 안장 없이 타다가 나중에 안장이 만들어집니다.

황준승 2017-03-28 00:01:31
답글

그렇군요.
안장을 사용하게 된 이후의 전투력 변화나 국력의 변화, 영토의 범위 등이 서로 연관이 있다면
아주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yws213@empal.com 2017-03-28 00:22:21
답글

재미있는 대목은 유럽에서 헝가리나 터키가 우리 민족을 자신들의 형제로 여기는데,
그들 역시 말 안장 없이 활쏘는 것을 대대로 잘했다고 자랑한다는 점입니다. ^^

윤계후 2017-03-28 13:59:24
답글

덩치큰 서양말은 말의 등짝이 너무 넓어 안장이 없으면 다리가 짧은 사람은 말에서 굴러 떨어지기 십상이고
몽고 조랑말은 체구작은 몽고인이 등짝이 좁아 다리를 크게 안벌리고 타도 안정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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