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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의 뿌리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7-03-17 20:34:13
추천수 15
조회수   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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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양원석 [가입일자 : ]

제목

묘족의 뿌리
내용
 전북대 김인희 연구원

고구려가 멸망(668년)한 뒤, 보장왕을 비롯한 20만 명에 이르는 고구려 유민이 당나라로 끌려갔다. 그중 10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고구려인은 다시 중국 남방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들 고구려 유민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 속 기록으로만 존재하며, 까맣게 잊고 지냈던 고구려인이 1300년이 지나 되살아났다.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의 역사"로, 중국 소수민족인 먀오(苗)족을 통해서다.

김인희(43) 전북대 쌀·삶·문명 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최근 출간한 저서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푸른역사)에서 먀오족의 뿌리가 고구려 유민이라고 밝혔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듬해 20만 명의 고구려 유민이 당나라로 끌려갔죠. 그들은 한족(漢族)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의 민족을 형성했어요. 중국 남방의 소수민족인 먀오족으로, 고구려 유민이 주축이 돼 주변의 여러 민족과 결합해 형성된 민족입니다."

먀오족은 중국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가 다섯 번째로 많은 민족으로, 구이저우(貴州)성 등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에 800만 명이, 동남아시아와 
미국캐나다, 프랑스 등에 2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김인희 연구원은 책에서 먀오족이 고구려 유민의 후예라는 근거로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신화학, 복식학 등 다양한 연구방법을 동원해 19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그러한 결론을 얻기까지 10여 년간 먀오족과 고구려와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고문헌을 뒤지고 수차례 현지를 답사했다.

그가 먀오족과 인연을 가진 것은 1990년 대 중후반에 
베이징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이다. 중국 소수민족의 창세신화를 연구하던 중 먀오족의 것이 우리의 거인신화, 난생신화 등과 공통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그리고 먀오족에 대한 연구를 심화해 <한국과 먀오족의 창세신화 비교연구>로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먀오족과 고구려 유민과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0년 중국 광시좡족(廣西壯族) 자치구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였다. 학술대회 중 들른 먀오족 마을에서 고구려인의 바지인 "궁고"를 입은 먀오족(흰바지야오족)을 발견한 것이다.

"중국 남방 민족들은 무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고대에는 경의(脛衣)라고 하는 
다리 부분만 감싸는 바지를 입었습니다. 지금은 한족의 영향을 받은 바지를 입구요. 그런데 먀오족인 흰바지야오족은 가랑이에 큰 천을 덧대 엉덩이 부분이 풍성한 궁고를 입고 있었어요. 남방 민족 중 "왜 먀오족만 궁고를 입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됐죠."

그가 고구려 유민과 먀오족의 관계에 결정적인 확신을 가진 것은 중국 문헌에 나타난 고구려의 흔적에 기인한다.

"2000~2005년 국내에서 고문헌을 
번역하던 중 고구려 유민이 남방으로 끌려간 지 40~80년 이후에 쓰인 <광이기(廣異記)>란 책에 후난성(湖南省) 일대에 "고려"라는 지명이 등장하고, 당나라 작품인 "기고희(寄故姬)라는 시에 후베이성(湖北省) 남부에 고려라는 지명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먀오족과 고구려 유민이 관련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죠. 틈나는 대로 먀오족 지역을 방문하곤 했는데, 문헌을 통해 확신을 하고는 2006년 아예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김 연구원은 먀오족의 기원부터 찾아 후베이성의 우한(武漢)에 1년, 산둥성(山東省)에 2년 반을 머물며 연구를 하였다. 이후 다시 윈난성(雲南省)으로 가 1년간 머물며 그동안 답사하지 못한 지역을 현장 답사했다. 

98년부터의 답사와 2000년대 문헌 연구, 2006년부터 새로운 지역을 답사하면서 먀오족과 고구려 유민의 연계성은 더욱 분명해졌다.

우선 먀오족의 역사, 즉 동이-삼묘-남만-먀오족으로 이어지는 일목요연한 역사가 사실과 다른, 1950년대 이후 중국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라는 사실이다. 먀오족은 송나라 때 문헌인 <노학암필기(老學庵筆記)>에 "가뤼(고려의 변형)"라는 민족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삼묘와는 3000년의 시차가 있고, 동이와도 관련성이 없다. 또 반호(개)를 숭배하는 역사를 지닌 남만과도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먀오족 여성들이 입는 치마에 그려진 두 개의 강과 
장례식 때 부르는 노래(지로경)는 고구려 유민의 역사를 함축한다.

"서부 먀오족은 조상이 눈 내리고 얼음이 얼고 밤이 긴 곳에서 전쟁에 패해 두 개의 강을 건너 왔다는 전설이 있는데, 치마의 두 강은 중국 황하와 장강(양자강)을 뜻하는 것으로 고구려 유민의 이동 경로를 말해줍니다. 동부와 중부 먀오족은 죽으면 고향(고구려)으로 돌아간다고 믿는데 장례 때 부르는 노래에 "해 뜨는 동방의 끝", "조상이 사는 곳" 등 고구려를 상징하는 표현이 많아요."

김 연구원은 고구려 유민 중 랴오닝성(遼寧省) 일대 차오양(朝陽)의 고구려인은 중국 남방 서부 먀오족의 뿌리가 됐고, 평양을 출발해 산둥성 라이저우(萊州)에 집결한 고구려인은 동·중부 먀오족을 형성했다고 설명한다.

그밖에 먀오족은 남방 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쌀", "벼"와 같은 도작 용어를 사용하고, 고구려 주몽 신화와 마찬가지로 시조가 알에서 태어나는 난생(卵生)신화를 갖고 있다. 형이 죽은 후에 형수와 
결혼하는 풍습, 나무로 깍은 신상을 동굴에 모셨다가 축제 때 모시고 와서 축제를 하는 것이 고구려와 마찬가지이고, 체질 인류학적 특징이 한국인과 흡사하다.

이러한 고구려 유민, 그리고 이들의 후예인 먀오족은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구려 유민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진 사람들)"였고, 이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 유민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정체성을 갖고 살아 남았지만, 여전히 소수자이자 주변인, 이방인으로 중국과 세계 각지에서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김 연구원은 먀오족이 그저 중국의 수많은 소수민족 중 하나가 아니라 역대 중국 정부의 이민족 정책의 실상을 파악하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중국의 소수민족, 먀오족에 대한 정책이 옛 당, 송, 원, 명, 청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유민(먀오족)에 가한 몰아내기와 몰살로 일관한 것과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먀오족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김 연구원은 말한다.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는 주요 근거는 고구려가 중국 왕조와 조공책봉을 유지했다는 점과 고구려 유민이 한족에 융합됐다는 것인데, 먀오족을 형성한 고구려 유민은 청나라 초까지 1000년 동안 자치권을 행사하며 독립된 민족을 이뤘고, 지금도 중국 밖에 200만 명이 거주해 완전히 중국에 흡수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먀오족은 중국내 소수민족 중 조상숭배를 통해 확고한 정체성과 결속력,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 민족의식이 가장 강한 민족 중의 하나라고 한다. 특히 구이저우성 동부 먀오족은 "저항" 정신이 강하다고 하는데 평양 출신의 반골집단이 기반을 이룬 때문으로 해석된다. 예나 지금이나 고구려를 닮은 먀오족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인류학자인 게디스는 "세계 역사상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은 두 개의 민족이 있는데 하나는 유대인이고 다른 하나는 먀오족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먀오족과 관련, 김 연구원은 향후 "동남아, 미국 등지에 있는 먀오족에 대한 연구를 해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더 찾아보겠다"고 한다. 고구려 디아스포라가 과거사가 아닌 현재의 역사임을 그는 진지하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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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seoul.co.kr/news/newsView.php


덧붙이는 글입니다.

[배달역사][묘족][묘족비석문자] 묘족. 모택동 때 땅에 묻은 비석의 문자(사진)



 

< 문화혁명 때 땅에 묻었다 최근 홍수에 발견 된 묘족의 비석의 녹도문. 출전: 김정민 박사 유튜브 동영상 43분 >




한글반포 570주년 한글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우리는 한글만 알았지 한글 이전 우리 옛글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모른다. 그리고 알더라도 애써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아래 김정민 박사 강의의 43분 35초 부터 3분 정도를 보라
지나(China) 남쪽의 묘족들이.. 모택동의 문화혁명시 문화재를 때려 부수자.. 이를 피해 땅에 묻었던 비석이 발견

되었는데.. 이 비석들에 새겨진 묘족의 글자와 우리의 녹도문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

1천만 명.. 묘족이 누구인가?
여러 설이 있으나 지나(China) 초나라의 부용국이었던 *라국羅國과 노국魯國이 있던 곳, 구려九黎의 후손이며 
당나라 때 고구려 유민 20여만명이 유배되었다는 곳..
그들이 비석에 녹도문을 새겼고, 그 비석을 모택동의 문화혁명시 파괴를 피해 땅에 묻었고, 그 묻은 비석이 지금 
다시 발견 되었고.. 그 비석의 비문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녹도문과 같다.
(*라국羅國과 노국魯國 - 지나 양만연 박사는 라국羅國과 노국魯國인 들이 초나라이후 한나라의 압박을 피해 
배달반도<=한반도>로 들어 와 신라와 가라를 건설하였다고 주장.. 양만연 박사가 우리나라의 지명과 지나의 지명을 비교한 내용이 아래 링크란 김정민 박사의 유튜브 강의에도 나온다)


                                            <사진 묘족 주거지역. 출전: 네이 지식백과>

그렇다면 녹도문이 사실이지 않겠는가?
구려九黎, 고구려 유민, 라국羅國과 노국魯國, 이 모두 밝땅족 배달겨레인데 그들이 오래전 비석에 녹도문을 새
겼다면 이제 더는 녹도문을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몇 년전 녹도문 가림토문 이두문 각자 향찰 등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기회가 있으면 다시 소개할 
생각이다.

 북구 까지 널리 퍼진 고조선과 탱그리(단군)

 

     우리 탱그리족 탱그리 문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구부터 유라시아를 지나 멀리 남북미주에 까지 퍼져 있다.

 


                                 < 유라시아의 알타이어 분포도 . 출전: 최후의 툰드라 유튜브 화면 >

위 지도를 보면 알아티어족의 분포를 알 수 있다.
*신용하 박사도 동아일보에 연재한 ????[다시 보는 한국역사]<1>~<10>에서..
단군을 시조로 삼는 나라가 많고 그러니 이 밝땅족을 하나의 고리로 엮는 역활을 우리 대한국 밝땅족 배달겨레 
가 중심에 서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범알타이계를 연구하는 다른 학자는 고조선의 밝땅족은 단일 민족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가 주인이라는 선민의
식을 가져서는 범알타이계의 단합이 어렵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신용하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독도학회 회장)


- 이하. 신용하 박사의 동아일보 연재 인용 -
"고조선을 기원으로 삼는 민족. 국가는 한반도와 만주 몽골 터키 일본,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와 발칸 반도,심지어 핀란드와

에스토니아처럼 발트 해 지역까지 퍼져 있습니다.그들 중 상당수는 현지화하면서 그 기원에 대한 계승의식이 약해진 반면

한국은 그 계승의식이 가장 뚜렷합니다.그런 점에서 하나의 고리로 엮는 역활은 한국 학자들의 몫이어야 합니다.
- 이상. 신용하 박사의 동아일보 연재 인용 -

 




덧붙인 것은 아래 카페에 게재된 글입니다.

cafe.naver.com/laroot/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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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강 2017-03-18 05:20:30
답글

동아시아인 Y-DNA 유전자 분포입니다. 하폴로 그룹이라네요.
https://en.wikipedia.org/wiki/Y-DNA_haplogroups_in_populations_of_East_and_Southeast_Asia
.

극동 아시아는 O그룹이 절대다수 입니다.

중국은 대체적으로 O3 가 많네요.
한반도 유전자는 O2, O3 구성
일본은 D, O2 유전자 비율이 높구요.
.
DNA 지도를 참조해서 고대사의 카더라와 정설을 상상해 보시면 재미납니다.
.
세계로 눈을 돌리면 O그룹은 아시아쪽에 많구요. 특히 인도네시아 발리가 압도적입니다.
발리에서부터 O그룹 인류가 동남아, 극동으로 퍼진 모양새일까요 ?

그리고 환빠들의 주장대로라면 전세계에 O그룹 인류가 넘쳐나야 하는데...
O그룹에 속하는 지역은 극동아시아 벗어나면 희귀해집니다.
.
.
.
결론 묘족은 O3계열이라 한반도 현주민과 공통된 DNA 보유자 입니다.

박헌규 2017-03-18 23:01:37
답글

그냥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묘족은 고구려가 건국되기도 훨씬 전인 진한 시대부터 세력을 형성하고 살았던 중요 민족이었습니다(춘추전국 시대의 춘추5패
전국7웅중 하나인 초나라-삼황오제의 한 사람인 전욱 고양이 세웠다고 하는데 그 자손들이 웅씨-단군신화의 곰과 연결해 생각해 보면 재미있죠-초나라는 기원전 223년에 멸망)
그리고 중국 4대 소수민족으로 중국 라오스 베트남과 그외 지역에 걸쳐 많은 수가 살고 있습니다.
고구려 유민이 얼마나 된다고 묘족의 본류를 형성하거나 시조가 될만큼 주류의 위치를 차지 할 수있었을까요?
그리고 유민이 묘족에 융합되었다 해도 고구려 출신들만 유난히 많은 자손을 퍼트렸을까요?
대부분 열악한 지역에서 목숨을 부지해온 처지에...

몽족은 알다시피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는 베트남 라오스지역의 묘족을 말하는 것인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편에 서서 부역을 하다 미국이 결국 철수를 하게되자 졸지에 매국노에 반역자가 되어
일부가 미국으로 탈출을 하는데
크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그랜 토리노에 이웃집 동양인 가족과 동포들이 베트남 몽족 이민자로 나옵니다.
배경을 알고 보면 영화가 약간 달리 보이는 면도 있는데 그냥 그린트 이스트우드의 성향처럼 보수적(어찌보면 좀 꼴통에 가까운) 휴먼 드라마로 보면 재미있는 영화죠
거기서 이스트우드는 한국전 참전용사고 그가 현역때 사용했을 M1 소총을 가볍게 들고 나옵니다.



yws213@empal.com 2017-03-19 19:38:40
답글

역사를 전공으로 하시는 분들이 논문에 관계된 글에 상식적이라니....,
참으로 비상식적인 댓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연구가가 연구해서 전파해 주는 정보에 대해서 수용할 대응 정보가 없다 하면 자신의 부덕의 소치일텐데....,
뭔가 아는 것이 있다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되지 않을까요?
거대한 유목민의 부족국가에서 분리되면서 뿔뿔이 흩어진 혈육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지요.

박헌규 2017-03-19 23:22:11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는 걸 (사회적 통념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 지식 판단)통상적으로 상식이라고 하죠.
그분의 주장일 뿐 학계의 정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설사 정설이라 하더라도 제가 이런 것이 당연히 순리적 판단이 아닐까 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
어떤 부분에서 비상식적인 것인지 모르겠군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과는 토론하지 않는다가 제 신조인데
종교인들도 종종 과학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주장의 권위를 뒷받침하려 하더군요.
치우신화가 재미있기는 한데 연대순으로 따지면 아무래도 고려 이후에 유입된 신화로 생각됩니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원에
굴복당해 있었던 고려 충렬왕때의 저작물-.
그것이 한반도의 실제 역사와 버무려진 확장증보판이 우리의 고대신화가 아닐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물론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한 ...
제 나름대로의 상식적 추측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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