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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비화(2) - 히데요시의 두 번째 협박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6-05-01 19:59:17
추천수 17
조회수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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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오세영 [가입일자 : ]

제목

임진왜란 비화(2) - 히데요시의 두 번째 협박
내용
 

외국학자의 자료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짧습니다.

실제로 히데요시는 멀리 인도(포르투칼 전진기지)까지 복종요구를 했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침공에 앞서 필리핀의 스페인총독에게도 복종을 요구하는 편지를 하라다 마고시치로 편으로 전했고 이제 3년이 지났다중간에서 난처해진 하라다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조선과 명에게 그랬던 것처럼 원래의 요구를 부드럽게 바꾸고 자신의 돈으로 선물을 구입해 마닐라 총독에게 선물했다.

총독 고메스 페레스 다스마리냐스Gomez Perez Dasmarinas는 의심을 품었다. 히데요시의 편지가 당시의 국제외교 기준으로 볼 때에 너무나도 불손하고 강경했다그렇지만 아직 필리핀 식민지 경영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스페인 펠리페왕은 세계최강의 군주이며 진정한 우정과 동맹을 환영한다는 답장과 답례품을 보내기로 했다.



 


왼쪽이 동남아시아 원정을 지휘했던 고메스총독입니다. 인도네시아 원정길에 따로 합류하다가 중국인 선원의 반란으로 살해당했고 스페인의 식민지사업은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아들이 식민지 사업을 이어받아서 필리핀 주변의 탐험을 계속합니다. 

 

그는 후안 코보Juan Cobo신부에게 일본으로 가서 편지를 직접 전달하고 히데요시의 의도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신부는 1592년 여름에 나고야에 도착해 히데요시를 만난 자리에서 지구본으로 스페인의 방대한 식민지를 보여주었다.

신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당시 스페인은 최절정기의 로마보다 방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를 보유했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같았다. 

그렇지만 중간의 통역잘못으로 히데요시는 신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구본을 복종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최절정기의 스페인 식민지입니다. 

 

히데요시의 두 번째 편지는 더욱 강경하고 위압적이었다태양과 자신의 사이에 있는 모든 나라가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전쟁으로 궤멸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하폰(일본)의 모든 영토와 조선을 정복했으며 많은 장수가 마닐라 원정을 청원하고 있소하라다가 이곳과 그곳을 왕복하며 마닐라 사람들이 적대적이지 않다고 하기에 군대를 보내지 않았소조선을 도우려던 명의 많은 귀족을 죽였더니 하폰과 영원한 우애를 바란다는 사절을 보내고 있소.

그들이 약조를 어긴다면 친정으로 파멸시킬 것이오. 그 이후에는 루손Luzon도 사정권일 것이오그러니 영원한 우애를 맺도록 합시다그런 취지로 카스티야왕(펠리페2)에게 편지를 보내시오그가 멀리 있다고 해서 내 말을 가볍게 듣지 않도록 하시오그 멀리까지 가보지 못했지만 어느 나라가 어디에 있는 지는 들은 바가 있소.”

 

후안 코보신부는 마닐라로 귀환하던 중에 난파되어 죽었고 1594년 4월이 되어서야 복사본이 필리핀총독에게 전해졌다고메즈도 필리핀 남부의 말루쿠Moluccas제도를 탐험하다가 중국인선원에게 피살되었다.



 


말루쿠는 필리핀 바로 밑의 섬지역입니다. 수군이랄 것도 없는 일본이 참 멀리도 욕심을 냈습니다. 


아들 루이스가 임시총독을 맡았는데 히데요시의 편지를 받고는 몹시 화를 냈다살해당한 아버지가 히데요시에게 머리를 조아렸다는 주장에 대해 확실한 답변을 하기로 했다태양이 히데요시의 탄생을 축복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태양은 무생물이며 신만이 그런 힘이 있다고 반박했다무지한 사람들의 조작에 놀아나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펠리페 폐하와 기독교 통치 하의 스페인 제국과 영토는 매우 방대하오… 스페인이 가진 아시아 영토는 모퉁이에 불과하오성서와 기독교 법률을 따르지 않는다면 폐하가 유일한 분이시오하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폐하는 그런 식으로 권위를 증명하지 않소폐하와 그 분을 대리하는 총독은 당신과의 우애를 원하지만 지난 편지보다 친절하고 솔직하기를 바라오.”

 

루이스는 전쟁회의를 열고 이 편지를 읽었다장교와 유력인사의 의견을 받아 히데요시의 태양축복에 대한 반박은 삭제했다양국은 2년 동안 별 일 없이 지내다가 1596년 가을에 보물운반선인 산 펠리페San Felipe이 난파되면서 완전히 반목하게 되었다.

금과 비단을 실은 갈레온 산 펠리페가 시고쿠 앞바다에 좌초되었는데 그 지역 관리가 수하물 대부분을 갖고 선원을 억류하는 일이 벌어졌다. 억류당한 항해사가 스페인이 일본을 중남미처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으며 종교인을 선봉으로 삼는다고 경고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히데요시가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간사이 일대의 기독교 신자 4,000명 중 지도급 24명을 체포했다기독교가 왕성하게 퍼지고 있던 나가사키까지 700km를 걷게 한 후에 처형했는데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2명이 추가로 처형되어 총 26명의 순교가 일어났다.

1597년 2월 5, 26명이 나가사키 언덕 위에서 십자가형을 당했는데 기독교에 대한 조롱이라기 보다는 당시 전국시대의 일반적인 처형방식이었다.


(우에스기 왈: 스페인은 이미 영국원정에서 무적함대 대부분을 잃은데다가 1596년에 국가파산 선고를 할 정도로 국력이 소진되어서 극동아시아까지 신경쓸 여지가 없었습니다.)



 



 

일본 나가사키의 26인의 순교지입니다. 


바다사자(머라이언)는 싱가폴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마닐라가 500년 전부터 문장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카스티야 성을 진주로 바꾸고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싱가폴이 훨씬 유명해서 좀 억울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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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명철 2016-05-02 09:49:12
답글

"대항해의 시대"가 지구촌 시대를 열었음을 전쟁의 역사에서 실감합니다.
아무튼 유럽식민제국의 눈으로 볼 때 일본은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이 뒤떨어지고, 동남아시아의 열대식물도 없고, 거리도 멀었기 때문에, 그리고 유럽 안에서 그들만의 전쟁 때문에, 상대적으로 눈독을 들일 가치가 떨어졌겠죠.

재미 있는 자료를 올려주셔서 잘 배웠습니다.

uesgi2003 2016-05-02 14:10:49

    전쟁사가 전문적이기는 하지만 전사학자들의 시각이 편협한 오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한 전사학자의 자료를 왜곡없이 전달해서 제 오류까지 겹쳐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종호 2016-05-02 12:17:48
답글

좋은 자료로 또 몰랐던 세계사를 배웁니다..ㅜ.,ㅠ^

uesgi2003 2016-05-02 14:12:23

    이종호선생님께서 즐겨주시니 좀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이명재 2016-05-02 17:02:51
답글

히데요시의 명정복이 아주 허황된 망상은 아니었었군요. 물론 히데요시가 생각하는 수준에서는요~

uesgi2003 2016-05-02 17:15:54

    당시 일본이 수군에 대한 개념만 갖췄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명제국도 심각했을 겁니다. 아마 명제국에 바로 상륙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전만 200년 가까이 했고 화승총이 전해지면서 육군하나만큼은 위력이 아시아 최강이었습니다. 참고로 일본 본토에는 아직도 20만 명 정도를 별 어려움없이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에 넘어온 것들 말고도요.

진성기 2016-05-03 18:53:01
답글

절 봤습니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전쟁 미치광이 들이 권력을 차지하는 것 같군요.
조일전쟁 전에는 지들끼라 맨날 싸우고
해안가의 도적떼들은 인근 나라에 해적질이나하고
임진년에는 커다란 전쟁을 일으키고
히데요시가 죽고 난뒤에는 또 지들 끼리 내전
메이지 유신으로 나라 힘이 커지자 군부가 군력을 잡고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맨날 전쟁을 일삼는 나라라는 인식 땜에 패전 후에는 전쟁을 못하도록 헌법으로 명시하게 했지만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기위해 미국의 힘을 빌어 군사력을 강화하다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방관하에 헌법까지 바꿔버리는 구제 불능인 나라를 이웃으로 둔게 불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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