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인문정신을 가리키는 말들의 어원은 라틴어 ‘후마니타스’로 소급된다. 그것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만든 말이다. 로마 문명이 그리스 문명에서 자양분을 공급받았듯 이 정신의 기본적인 개념도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필란트로피아’와 ‘지식’ 또는 ‘교육’이라는 의미를 갖는 ‘파이데이아’에 기원을 둔다. 거기에 시대마다 여러 인물들이 특정의 의미를 덧붙이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정신’이라는 행동 규범에 겹겹의 의미가 쌓이게 되었다. 그러니 이 단어의 역사를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그 뜻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는 첩경일 것이다.
직접민주주의가 성행하던 고대 세계에서 웅변술은 정치가들의 중요 덕목이었다. 키케로는 이상적인 웅변가의 요건으로 인문정신을 꼽았다. 키케로에게 인문정신이란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점잖고 충실한 사적 삶을 영위하는 덕성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고전 지식을 갖춰 젊어서나 늙어서나, 순풍을 맞든 역경에 처하든 품위를 지켜야 했다. 그것은 고결한 삶이다. 고결하게, 즉 정신적으로 우월하게 산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수 있을 때 가능했다.
그것은 약자에 대한 개인적 차원의 배려뿐 아니라 약소민족에 대한 배려도 포함했다. 키케로는 로마의 속주였던 “아프리카나 에스파냐나 갈리아 사람들 같은 거친 야만족을 지배하도록 운명의 여신이 명했다면 그들의 평안과 욕구와 안전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신의 인문정신”이라고 말한 바 있다. 키케로보다 한 세기 뒤에 소 플리니우스도 인문정신이란 “열등 민족의 애정을 얻는 능력”이라고 정의내린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 유럽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며 그들에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들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옛날 고전 고대에 만들어진 인문정신을 계승하는 후계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