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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소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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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4 00: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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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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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가입일자 : 2010-05-05] |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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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소녀들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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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 중 국토가 가장 작은 에스토니아는 역사를 통해 덴마크,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주변 강국에 점령당하거나 지배를 받으며 약소국의 서러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독립 의지로 이어져 강대국에 대한 저항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에스토니아의 국민소득, 인권 지표, 교육 수준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것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1차대전 이후 에스토니아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그렇지만 러시아를 물려받은 소련이 1944년 에스토니아를 재점령했다. 그 뒤 소련은 에스토니아인들이 자랑스럽게 건립한 독립 기념물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독립을 위해 전몰한 87명의 공적을 기려 페르누시에 세워진 기념비도 폭파했고 수도 탈린시에 있는 국립묘지도 훼손했다.
소련은 에스토니아인들의 기억 말살을 위해 독립 기념물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기념탑까지 세웠다. 그 탑 꼭대기에는 붉은 별이 걸려 있었다. 어느 날 밤, 두 소녀 아일리 위르겐손과 아게다 파벨이 탈린시에 세워진 소련의 전승기념탑을 폭파했다. 아일리는 “언제까지 우리가 이 약탈자들을 찬양하는 붉은 별을 봐야 한다는 말인가!” 한탄하며 거사에 나선 것이다. 기사화되지 않았지만 탈린 시민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14살의 아일리와 한 살 위의 아게다는 결국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우랄 산맥에 있는 강제수용소의 석탄 광산에서 8년 동안 노역을 해야 했다. 위르겐손은 그곳에서 동향의 다른 수감자와 결혼했으나, 남편이 핀란드의 첩자라는 혐의를 받아 복역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다가 1970년에야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24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 둘은 1988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의 훈장을 받았다. 에스토니아에서 그 훈장을 받은 여성은 그 둘뿐이다. 아일리는 소련의 몰락 이후 정치계에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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