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동네 친구가 생겼다. 관심사가 비슷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즐거웠고, 이곳 토박이인지라 동네 구석구석에 얽힌 사연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집이 가까우니 한밤중에 슬리퍼를 끌고 나와 만나도 부담이 없었다. 오랜만에 생긴 동네 친구 덕분에 삶이 한층 풍요로워진 느낌이었다.
이 친구가 동네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동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희망도서를 신청하다 친구의 이름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이 어떤 도서를 신청했는지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친구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책 제목으로 봐서 동명이인은 아닌 듯싶었다. 호기심이 일어 친구의 이름으로 희망도서 목록을 검색해봤다. 그녀가 매월 어떤 책들을 도서관에 구입해달라고 했는지 그 목록이 쭉 보였다.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맘을 먹는다면 내가 신청한 희망도서의 목록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조금 망설이다가 도서관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친분 있는 사서 선생님들께 이야기를 건넬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사적인 부탁으로 여겨질 수 있으니 차라리 공개적으로 사안을 논의해보는 게 맞겠다 싶었다.
“현재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희망도서를 신청하면 신청자의 이름이 모두 공개되고 있습니다. 희망도서를 신청할 때 다른 사람이 이미 신청한 책인지 확인해보는 용도로 책 제목을 검색해볼 순 있겠지만, 신청자의 이름은 개인정보이므로 공개되지 않는 게 맞을 듯합니다. 이에 대한 도서관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당사자 허락 없이 대출 기록 공개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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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희 제공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서관 대출 목록을 기사화한 <고베 신문>. |
글을 올려놓고서는 불안했다. 이 문제로 도서관 관계자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고, 도서관 관계자들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나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실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도서관 측의 답변을 받았다. 이 사안에 대해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홈페이지 시스템을 바꿔서 희망도서 신청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 선생님은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아무런 토도 달지 않은 시원한 사과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착실한 도서관 이용자이다 보니 도서관에 매달 꼬박꼬박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그 외에도 많은 책을 대출해서 읽는다. 하지만 내가 어떤 책을 신청하고 읽었는지에 대해 ‘뒷조사’가 가능한 상황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남들 몰래 읽고 싶은 책도 있는 법이고, 내 삶의 이력 하나를 타인에게 내보이는 기분이 들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신청하고 읽은 책의 목록을 도서관에서 임의로 타인에게 공개할 권한은 없다. 그것은 도서관과 나 사이에서만 공유되어야 하는 정보인 것이다.
얼마 전 일본 <고베 신문>에서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교 시절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의 목록을 기사화했다. 대출 기록은 책 폐기 분류 작업을 맡았던 이를 통해 우연히 유출되었는데, 일본 도서관협회는 “사생활 침해”라며 즉각 항의했다. 이에 신문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떻게 문학 세계를 반전시켜나갔는지 밝히는 건 학술 연구의 대상”이라는 말로 기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학술 연구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당사자의 허락 없이 대출 기록을 공개해도 되는 걸까?
<고베 신문>의 기사에 항의하는 의미로 하루키가 고교 시절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여기에 소개하지 않겠다. 그리고 나도 지은 죄가 있으니 사과하겠다. “친구야, 미안하다. 내가 네 희망도서 신청 목록을 검색해봤어. 다시는 안 그럴게. 그리고 깜빡하는 기억력 덕분에 그 목록은 이미 잊었어. 다시 검색해볼 수 없게 도서관 시스템이 바뀌는 데도 일조했으니, 부디 내 사과를 받아주렴.”
https://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997&dable=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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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몇 년 전의 도서 대출현황입니다. 이렇게 공개하는 것은 민낯을 드러내 부끄러운 감정에 휩싸여 듭니다만 그래도 공개해 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지나가시면 좋겠고 타산지석삼아 자신의 독서 이력을 쌓는 것은 아주 좋은 것이지요. 저의 도서대출 이력을 참고 하시면 제 의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는 것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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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는 자료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