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굳이 전문기사의 찬탄 어린 해설을 듣지 않아도, 기존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깬 수들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며 경악했다. 인간 최고수가 바둑의 신과 수담을 나누면 치수가 어떻게 될까 하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을 보고 있는 듯한 심정을 갖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인간의 역사에 항시 있었다. 그에 대한 인간의 소회도 유달랐기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그것을 표현해왔다. 괴테의 시에서 착상하여 뒤카가 교향시로 만들었고, 월트 디즈니의 만화 영화 <판타지아>를 통해 널리 알려진 <마법사의 제자>는 자신이 걸어놓은 마법을 풀지 못해 곤경에 처한다. 메리 셸리의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인조인간은 박사의 의도를 벗어나 악행을 저지른다.
인간의 산물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현상은 문학자들의 상상 속에만 있지 않았다.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고 하지만 역사의 흐름이 인간의 의도대로 흘러갈까? 그렇지 않기에 마키아벨리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이 인간의 의지와 역사의 방향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심했다. 인간이 경제의 개념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인간은 경제의 지배를 받는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아파트를 직접 만든 노동자는 그 아파트를 소유하지 못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소외’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지만, 사실 인간 소외는 특히 오늘날 사회의 도처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승점을 기록하긴 했지만 결국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결국은 알파고도 인간 집단 지성의 산물임을 받아들인다면? 소외의 개념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인간의 발전의 한 동력이었음을 다소나마 인정한다면, 알파고의 승리가 열어놓은 미답의 세계에 대한 탐색이 바둑은 물론 삶 자체를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