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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의 서양사람] 장미의 이름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6-03-09 20:00:54
추천수 31
조회수   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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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한욱 [가입일자 : 2010-05-05]

제목

[조한욱의 서양사람] 장미의 이름
내용
 



한 세대를 풍미했던 작가이자 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별세했다. 소설가로, 문학비평가로, 철학자로, 언어학자로 큰 족적을 남긴 그였는데, 세계적 명성의 출발점에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있다. 신비한 제목의 이 소설에서는 서양 중세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호학의 이론이 추리소설 속에서 결합한다. 마치 작가의 모든 경력이 이 작품 속에 집약된 것 같다.

 

열렬한 독자로서 제목의 연원이 궁금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문의 이름 때문에 사랑의 시련을 겪는 줄리엣이 한탄한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장미라 부르는 것은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로울 텐데.” 이 대사가 그 제목의 한 출처는 아닐까 알아봤다. 그러나 <장미의 이름>은 10개 정도의 후보군에서 저자가 출판사와 합의해 고른 제목임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어쨌든 먼 나라의 일개 서생에게 지적 궁금증을 자아낼 만큼 이 소설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 책은 사라졌다고, 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부를 둘러싼 이야기다. 그것은 희극, 즉 웃음에 대한 책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선을 지향하는 힘”임을 인정한다. 중세의 지식인 계층인 수도승들은 그 책을 읽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도서관장 요르게는 책장에 독을 묻혀 그 책을 보려 하던 수도승들을 살해한다. 요르게는 경망스런 웃음은 악마로부터 오는 것이고 그것은 수도승의 참된 신앙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수도원의 규칙에만 충실하다. 그는 신학의 한 규범으로 숭상받게 된 아리스토텔레스가 웃음을 긍정하는 책을 썼다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하다. 수사를 맡은 주인공 윌리엄에 의해 내막이 드러나자 요르게는 독이 묻은 그 책장을 씹어 삼킨다. 실랑이 속에 불이 붙어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도서관이 수도원과 함께 재로 바뀌었다.

 

독선에 사로잡힌 요르게에게서 권력의 민낯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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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열 2016-03-09 20:56:26
답글

요르게는 독이 묻은 책장이라도 씹어 삼켰지요. 하지만.... 현재의 권력은 내막이 들어나도.... 그냥 그 자리에 뭉개고 앉아 있습니다.

조한욱 2016-03-10 04:07:19

    그러게 말입니다.

용정훈 2016-03-09 21:31:31
답글

읽은지가 너무 오래된 소설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세 기독교와 대립하면서도 깊은 영향을 남겼던알비(카타르)파에 대한 윌리엄의 이야기는 아직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 소설의 진가를 파악하기 너무 어렸습니다. 저자가 별세한 지금 다시 그의 소설 전 작품을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한욱 2016-03-10 04:08:38

    알비파도 기독교의 분파죠. 단지 이단으로 몰렸을 뿐. 오히려 성경을 더 엄격하게 준수하자고 했던 사람들인데, 가톨릭 위계질서의 바깥에 있었으니.

강승화 2016-03-09 22:07:10
답글

저도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장미의 이름도 좋아하는 작품이고... 다만 'Jorge'는 호르헤로 읽어야 하는 걸로 알고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부르고스 사람이라고도 나와있고, 이 인물의 실제 모델이 에코가 큰 영향을 받은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라고 에코 스스로도 밝혔던 걸로 알고있습니다. 아마도 옛날 번역서에는 이름이 요르게로 나왔나 보네요. 아, 참고로 제목은 소설 말미에서 인용한 중세 시구에서 따온 것이라더군요. 제목에 관한 사연은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에 도 나와 있습니다 ^^

조한욱 2016-03-10 04:13:59

    아, 제가 갖고 있는 책이 오래된 거라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 시는 Alanus ab Insulis, 불어로는 Alain de Lille의 시겠죠.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저 대사를 보는 순간 곧바로 이 소설이 떠올랐었죠. 그만큼 이 소설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제 본인의 사례를 들었던 것 뿐이랍니다.
사실 중세 철학에서는 유명론과 실체론(실념론)의 대립이 가장 중요한 주제의 하나인데, 그 때 종이나 속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장미'를 가장 많이 사용했고, 또한 장미는 프리메이슨 같은 집단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강승화 2016-03-10 09:44:22

    아, '장미'란 단어가 중세 철학에서 꽤 사용되던 상징이었나 보네요. 말씀을 듣고 보니 셰익스피어의 그 대사 역시 같은 뿌리에서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르게, 호르헤라... 하긴 유럽 사회에서는 고유명사의 읽는 방법도 제각각이니 예전 번역의 표기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없을것 같네요^^. 기회가 닿는다면 예전 번역본 역시 읽어보며 요즘 번역본과 대조해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에코의 큼지막한 중세사 책이 얼마 전 서점에 나왔길래 아직 정정할줄 알았더니 불현듯 별세라니 참 안타깝네요...

조한욱 2016-03-10 10:44:48

    그 이름이 영어로 가면 조지가 되는 거겠죠. 같은 Jorge라 하더라도 이탈리아에서는 요르게라 읽고 스페인계에서는 호르헤라 말할 것입니다. 원어를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철저한 원칙에 따라 초판본 이후에 호르헤라 바뀌었다 할지라도, 아마 이 소설의 상황이 실재였다면 거기에서 사람들은 그를 요르게라 불렀을 것 같습니다. "이름이 요르게건 호르헤건 사람은 같을 텐데..." 나중에 Rosenkavalier라는 장미의 기사단이 생겨나는데 그들도 occult(비교) 집단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박헌규 2016-03-09 22:46:52
답글

장미의 이름은 수도원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푸코의 추는 길이도 그렇고
읽는게 고문이었습니다.
스토리를 따라가기도 버거웠던 낮설은 용어들의 연속.
고약한 에코영감님, 동양의 촌놈을 골탕을 먹이려고 작정을 하셨던 건 아니었던지..

조한욱 2016-03-10 04:15:00

    "푸코의 추"는 어렵죠. 저도 읽다가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진성기 2016-03-09 23:04:43
답글

지나간 시간의 이정표가 있습니다.
어쩌다 옛사랑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시절의 추억들이 되살아나죠.
그러면 그리워 지는 건 그 첫사랑보다도 그 시절의 자신이 더 그리워질 때도 있고.
그건 아마도 그 사랑을 그리워 하는 것보다는 그 사랑을 이정표 삼아 그 시절을 그리고 그시절의 나를 그리워 하는 것 인지도...
장미의 이름으로 란 제목을 보면서
이 책을 읽고 있었던 환자도 거의 오지 않었던 조그만 섬 마을 보건지소와 그곳에서 미니카세트의 음악들으며
이 책을 읽고 있었던 내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참 한적한 날들이었죠.
소설 내용은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부터 중간 중간 끊어지듯 가물가물하지만
그 시절 보건지소의 풍경은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네요.

작가는 지난 달 죽었군요.

젊은 시절의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해 주엇던 대가들의 타계소식은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에 선을 그은 듯 한 세상이 바뀌는 듯한 한 느낌을 줍니다.
얼마전의 디스카우의 죽음도 그랬듯이

조한욱 2016-03-10 04:16:01

    아, 추억이 담긴 작품이었군요.

김준남 2016-03-09 23:49:57
답글

이책(열린책들)의 고약한 줄간격이 생각납니다. ㅋㅋ

조한욱 2016-03-10 04:16:33

    옛날엔 책이 다 그랬는데...

김좌진 2016-03-10 00:06:49
답글

역시 어르신들. 요르게라는 표기는 초판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장미의 이름까지는 그럭저럭 견디고 전날의 섬 (군대에서 읽을 게 없어서) 은 제법 이해하며 읽었는데 그 다음 작품부터는 소설로서의 재미는 떨어지더군요.
그 탓이 이윤기 선생의 번역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조르바도 그렇고 묘하게 번역이 정확하기는 한데 어휘가 좀 옛스럽고 문장이 질질 끌리는 느낌이 공통적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십여년 전에 에코 등이 공동 저술한 "세 사람의 사인", 당시는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 있었는데 잘 읽다가 친구 빌려주고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절판되어서.
얼마 전에 서점에 갔다가 "셜록 홈즈, 기호학자를 만나다"라는 더 이상한 제목으로 다시 나왔길래 반가와 얼른 구입했는데 공교롭게도 에코가 돌아가셨네요.

조한욱 2016-03-10 04:19:04

    에코의 팬이시군요. 제가 갖고 있는 책은 한 권으로 된 초판본 같습니다. 이후 두 권으로 나눠서 나왔다고 알고 있고, 한 때는 이윤기 선생의 번역의 오류도 체크해두고 했었는데, 강유원씨가 꼼꼼이 지적해서 이윤기 선생이 그걸 반영했다는 번역계의 전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ccpns@hitel.net 2016-03-10 10:47:55
답글

댓글 읽는 것도 재미있네요. ^^
요르게는 아마 독일어권 인물일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읽었겠죠.
장미의 이름 제가 가지고 있는 것도 두권이구요. 장미의 이름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푸코의 추를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않아 다 읽지못하고 반납한 기억이 나네요.

댓글중에 거론되지않은 책 한권 있습니다. 미의 역사.
미의 역사 다 읽고 추의 역사도 사보려고 했는데 아직 추의 역사는 제게 없습니다. 게으른 탓이죠 ^^;

조형래 2016-03-10 12:43:21
답글

본문과 댓글을 읽노라니 문득 예전에 본 dvd "장미의 이름" 이 생각났다.
집 어디엔가 있을텐데 다시 찾아봐야 겠다.
내용이 생각나는 것 같이도 한데, 이참에 책도 한번 사야겠다.
독서 욕구와 글올려 주신것 감사합니다.

김좌진 2016-03-12 16:43:03
답글

이윤기 선생이 번역가이지 철학자가 아니다보니 번역이 이상한 게 다소 있었다고 하지요. 사실 클래식 음악 책도 음악애호가가 아닌 번역자가 손대면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대학원 때 그냥 주위의 음대생 논문의 영어초록을 영작해줬는데 그 학교 그 기수의 논문심사에 조용히 넘어간 게 그 친구 것 뿐이었다고 하더군요.
보통 학교 근처의 번역집에 맡기는데 한글초록을 아무리 잘써도 영어로 옮기면서 무슨 의미인지 실종되어버리고. 마침 제가 영국의 그라모폰지를 보면서 영어공부를 했기 때문에 익숙했던 덕을 봤지요.
이런저런 사람을 통해서 영작 의뢰가 들어왔는데 안해줄 수도 없고 덕분에 용돈 좀 벌었지요. 고학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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