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길이 5㎝도 안 되는 작은 팬탈라 잠자리가 세계에서 가장 먼거리를 나는 여행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잠자리들은 대양을 건너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미국 럿거스(뉴와크)대 생물학자들은 유전자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아내 과학저널 ‘플로스 원’(PLoS One) 최근호에 발표했다.
‘팬탈라 플레이베슨스’( Pantala flavescens)란 학명으로 불리는 이 잠자리들은 미국의 텍사스와 캐나다 동부에서부터 일본과, 한국, 인도, 남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돼 있다. 이렇게 세계 각지의 넓은 지역에 퍼져있는데도 유전자 프로필이 매우 유사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 즉, 몸집에 비해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해 번식하며, 이를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개체끼리 만나 교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세계 공동의 유전자 풀을 생성한다는 설명이다.
팬탈라 잠자리의 몸체와 날개는 기류를 타고 엄청난 거리를 활공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 Greg Lasley / Wikipedia
“팬탈라 잠자리, 1년에 한번은 인도와 아프리카 왕래”
논문의 시니어 저자인 제시카 웨어(Jessica Ware) 생물학과 조교수는 “이번 연구는 팬탈라 잠자리들이 얼마나 멀리 여행하는가를 유전자 분석을 통해 보여준 최초의 연구”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북아메리카의 잠자리가 그곳에 있는 잠자리와만 번식하고, 일본 잠자리는 일본 것과만 번식한다면 유전적 분석 결과가 북아메리카 잠자리와 일본 잠자리가 서로 다를 것”이라며,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유전자가 광범위한 지역을 가로질러 혼합됐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대륙에 사는 잠자리들은 어떻게 서로 만나 접촉을 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수천마일을 여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큰 새나 고래가 아니다. 웨어 교수는 잠자리들의 몸체가 진화한 방식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잠자리들은 바람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을 만큼 날개 표면이 넓게 진화했고,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면서 날개를 팔락이면 오랫 동안 활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시카 웨어 교수(왼쪽)는 유전적 증거를 통해 볼 때 팬탈라 잠자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거리를 이동하는 생물체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다니엘 트로스트 연구원(오른쪽)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팬탈라 잠자리의 유전자 표본을 분석했다. ⓒNora Luongo/Rutgers University-Newark
실제로 잠자리들이 인도양을 건너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찰된 적이 있다. 웨어 교수의 연구실에서 잠자리 DNA 표본을 분석한 다니엘 트로스트(Daniel Troast) 연구원은 “잠자리들이 날씨를 따르고 있다”며, “인도에 건기가 닥치면 잠자리들은 습도가 높은 아프리카로 옮겨가는데 일년에 한 번은 분명히 그렇게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잠자리들은 특히 가을에 상승기류를 이용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가끔 큰 무리를 지어 먹이를 찾기도 하는데, 34㎢ 넓이의 하늘을 뒤덮을 만큼 엄청난 무리를 형성한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이렇게 큰 무리의 잠자리가 나타나면 우기가 시작되는 조짐으로 알려져 있다.
팬탈라 잠자리의 세계 분포도. ⓒ Wikipedia
“종족 보존 위한 ‘자살 임무’”
습기는 잠자리들이 알을 낳는 등의 생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서 바로 그같은 위험한 여행을 무릅쓰는 이유이기도 한다. 웨어 교수는 이를 ‘일종의 자살 임무’라고 부른다. 종족의 사활이 여기에 달려있는 셈이어서 대양을 횡단하는 동안 많은 수가 죽지만 충분한 수의 잠자리가 살아남아 종족이 유지된다.
비행 패턴은 다양하게 보인다. 가장 어려운 점은 논스톱 비행으로, 강력한 기류를 타야 하고 때로는 허리케인을 만나 계속 활강을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물웅덩이를 뛰어넘듯 비행을 해야 하는 수도 있다. 잠자리들은 짝짓기와 산란을 위해 신선한 물이 필요한데, 기류를 타고 가다 폭풍우가 만들어놓은 신선한 물웅덩이가 있으면 넓은 대양의 한 중간에 있는 섬일지라도 지상으로 바로 하강해 짝짓기를 한다. 이때 낳은 알들이 부화해 충분히 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데는 수주일이 걸린다. 새로운 세대는 대륙을 건너는 무리에 다시 합류해 부모의 뒤를 이어 다세대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전체 이동거리는 약 7000㎞. 지금까지 가장 멀리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모나크 나비가 북아메리카를 가로질러 되돌아가는 거리 4000㎞보다 훨씬 먼 거리다.
팬탈라 잠자리는 전세계 5000종 이상의 잠자리 중에서 단연 뛰어나 보인다. 이 잠자리는 사촌인 녹색 잠자리(Anax junius)와 함께 세계 여행자로 발전했다. 반면 다른 잠자리 종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연못 주위를 떠나본 적이 없이 평생을 겨우 11m 정도 안에서 맴돌고 만다고 웨어 교수는 지적했다. 이 같은 엄청난 차이 또한 진화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