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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의 서양사람] 밤의 열기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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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5 07:3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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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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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가입일자 : 2010-05-05] |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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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의 서양사람] 밤의 열기 속으로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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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노예로 바하마에서 경작한 토마토를 마이애미에서 팔던 부부가 팔삭둥이를 낳았다. 생존 가망이 없다 했지만 세 달에 걸친 부모의 지극정성으로 아기는 살아나 미국 시민이 되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접시를 닦으며 연기 수업을 받았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점차 시드니 푸아티에라는 이름을 알렸다.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푸아티에’라고 부르나 우리에겐 ‘포이티어’로 잘못 알려진 배우다. 1967년의 세 영화 <언제나 마음은 태양>, <밤의 열기 속으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인종 차별이라는 미묘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널리 공감을 얻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밤의 열기 속으로>는 후속편이 둘이나 이어질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필라델피아의 흑인 경관 버질 팁스가 흑백 차별이 심한 미시시피주의 작은 도시에서 살인 사건의 해결에 휘말렸다. 흑인을 ‘아이’라고 부르는 그곳의 백인들에게 그가 내뱉는 “내 이름은 미스터 팁스야!”라는 말은 미국 영화의 역사에서 명대사로 꼽히고 있으며, 한 후속편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뺨을 때리는 백인 농장주의 뺨을 되때려 갚는 장면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으며, 푸아티에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표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남부가 아닌 북부의 농장에서 영화를 찍었지만, 목화 농장의 장면을 찍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부에서 촬영을 할 때 그가 머리맡에 권총을 두고 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1964년 흑인 최초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그가 2002년 오스카 공로상을 받았다. 그 수상 연설은 감동적이다. 그는 따라야 할 어떤 길도, 어떤 관례도 없던 시절에 어렵게 영화를 만들어 영화 산업과 미국, 그리고 더 나아가 전세계인에게 혜택을 준 영화 관계자들을 치하했다. 그런 뒤 자신은 박해와 괄시를 무릅쓰고 영화계에 종사했던 흑인 선배들의 어깨에 올라앉았던 것뿐이라며 그들에게 공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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