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혁명의 딸들’이라는 비영리 단체가 있다. 1889년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의 취임 100주년을 기념하여 애국심을 더욱 고취시키기 위해 창설된 여성 조직인데, 미국의 독립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의 자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가입할 수 있다. 미국의 50개 주는 물론 외국 여러 나라에까지 3000에 달하는 지부를 둘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여, 역사 에세이 콘테스트를 열기도 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봉사 활동을 벌인다.
‘제헌관’이라 이름 붙인 이 조직의 워싱턴 본부 건물에는 미술관과 도서관도 있는데, 음악회가 열리는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1939년 이 단체에서는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명성을 쌓았던 흑인 콘트랄토 마리안 앤더슨의 공연을 거부했다. 당시 워싱턴은 흑백을 차별하던 지역으로서, 흑인과 백인이 뒤섞여 공연을 관람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연히 이런 결정은 흑인은 물론 의식 있는 백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엘리노어 루스벨트마저 이 단체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하며 탈퇴했지만 흑인은 분리된 뒷좌석에 앉아야 한다는 조처가 바뀌지는 않았고 결국 공연은 무산되었다.
이 일은 클래식 음악가로는 드물게 앤더슨이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명성을 치솟게 만들었다. 그해 부활절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주선으로 앤더슨은 링컨 기념관의 계단 위에서 공개 콘서트를 열었다. 7만5천의 관객이 운집했고, 수백만의 청중이 라디오 실황 중계를 즐겼다. 그리고 1955년에는 유색인종 최초로 메트로폴리탄의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 콘서트에서 아리아를 부르긴 해도, 연기를 못한다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오페라 무대를 거절하던 그의 유일한 오페라 공연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였다.
오늘날 ‘미국 혁명의 딸들’은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자격이 있는 모든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