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비가 눈물처럼 위령탑을 적셨다.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그 앞에 섰다. 1943년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이 나치에 맞서 28일간 봉기했다가 5만6000여명이 참살당한 일을 기리는 탑이다. 잠시 고개를 숙인 브란트가 뒤로 물러섰다. 의례적 참배가 끝났다고 여긴 일부 기자들도 따라 몸을 뺐다.
그때 브란트가 위령탑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듯이 터졌다.
브란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독이 폴란드와 관계정상화를 위한 바르샤바조약을 맺는 날 아침,
브란트는 나치 독일의 잘못을 온몸으로 사죄한 것이다.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유제프 치란키에비치 폴란드 수상은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던 차 안에서
브란트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그는 말했다.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Forgivable, but Unforgettable)”
그 뒤 폴란드인은 바르샤바에 브란트 광장을 만들어,
무릎을 꿇은 브란트의 모습을 담은 기념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