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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혁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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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0 10: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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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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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가입일자 : 2010-05-05] |
제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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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혁명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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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36년간 총리로 포르투갈을 지배한 독재자였다. 그가 구축한 체제 ‘이스타두 노부’는 ‘새 나라’ 또는 ‘새 누리’로 번역할 수 있으려나? 1926년 쿠데타를 통해 정계에 입문해 1932년에 총리가 된 그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보수적 국가주의 체제를 공고히 다졌다. 가톨릭교회를 옹호하긴 했지만,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선을 그었다.
그러한 체제가 에스파냐 내전에서 프랑코 총통의 파시스트 정부를 지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여러 대륙에 널려 있던 식민지를 하나의 제국으로 간주하며 억압적으로 간섭하여 전쟁을 불사하는 제국주의 정책을 지속시켜 나간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또한 반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력에 의존하며 검열과 탄압을 자행한 것도 마땅한 일이다. 그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살라자르가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뇌출혈을 일으켰다. 곧 사망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2년을 더 생존했지만, 총리는 교체되었다. 그 기간 중 간혹 정신이 돌아올 때면 주변에선 그가 여전히 총리로 있는 것처럼 대해줬다.
1970년 마침내 그가 사망하고 4년이 지난 뒤 체제에 반대하던 장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시민 저항이라는 예기치 못했던 거대한 물결과 합류하게 되었다. 결국 ‘이스타두 노부’가 무너지고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와 동티모르의 식민지에서 물러났다. 이것을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총성이 거의 없었고, 시민들이 독재와 식민지 전쟁의 종말을 축하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을 때 군인들의 총구와 제복에 카네이션을 꽂아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포르투갈에는 민주주의와 함께 거대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다. 포르투갈에서는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4월25일을 ‘자유의 날’로 지정해 국경일로 만들었다.
우화 같은 실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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