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체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공산화되자 미국 국민의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1950년 2월 한 국회의원이 미국 국무부 내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연설로 그들을 경악시켰다. 그 숫자는 계속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그저 ‘많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미 상원 특별위원회의 조사 결과 그의 주장엔 아무런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그의 인기가 치솟으며 상원의원에 재선되었다. 바로 두 번에 걸쳐 이 칼럼을 통해 소개했던 매카시의 이야기다. 재선된 그는 스스로 사문위원장이 되어 고발을 계속했다. 정치인은 물론 유명한 학자와 지식인들도 그의 고발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그와 함께 광풍도 가라앉자 냉정을 되찾은 국민과 의회가 그를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모두에게 버림을 받으며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떴다. 매카시의 행적에 바탕을 둔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는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근거 없이 남을 매도하며 무모하게 선동을 획책하려는 비열한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매카시 이야기를 또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빤한 것이다. 대통령의 속내를 실현시키기 위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들고나온 집권 여당 대표의 주장이 매카시를 더욱더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 묻어 조상의 친일 전력을 숨기려는 자들의 저의도 결을 같이하고 있음은 확연하다.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좌파의 준동에 의해 서술되었다고 말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역사는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학의 기본적인 전제이다. 그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전통적 의무이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던 역사 교사, 교수들 대다수는 바로 그 의무의 부름을 받은 것뿐이다. 임기가 한정된 어느 정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침해당할 성질의 의무가 아니란 말이다. 어찌 감히 역사를 말하는가? 뻔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