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동안 제 책 "내 곁의 세계사"에 대한 방송이 나갑니다. 이인혜, 남정미의 진행으로 이루어지는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제 관점이랄까 하는 것도 이야기될 것이고, 어쨌든 유쾌하게 방송을 했으니 들어보실 만할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문학평론가 권오룡 선생이 이 책에 대해 꽤 상세하게 서평을 했더군요. 첨부합니다.
"1940년 독일군이 네델란드를 점령했다. 에다 반 헴스트라는 열한 살의 아름다운 소녀가 한 무용학교에서 발레를 배우고 있었다. 실력이 일취월장한 그 소녀는 레지스탕스를 돕기 위해 1944년부터 비밀리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발레를 공연하며 기금을 거뒀다. 공연이 끝날 즈음이면 사람들은 감동에 젖어 쥐 죽은 듯 고요해지곤 했다."
누구에 대한 이야기일까? 답은 마지막 문단에 나온다.
"<로마의 휴일>로부터 <멋쟁이 도둑>,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거쳐 <어두워질 때까지>에 이르기까지 그는 뛰어난 연기와 눈부신 자태로 만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경험은 만년의 그로 하여금 많은 시간과 정열을 유니세프에 쏟아붓도록 만들었다.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아프리카와 남미와 아시아의 열악한 환경에서 봉사했던 때가 그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다."
굳이 밝힐 필요도 없이 오드리 헵번 이야기이다.
이렇게 조한욱 교수의 <내 곁의 세계사>는 많은 세계사적 인물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면모를 소개하면서 그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는 책이다.
이 간단간단한 인물 평전이 오드리 헵번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감동만을 선사하는 것도 아니다. 포함되어 마땅한 마틴 루서 킹 같은, 현대의 성인이라 일컬음직한 인물의 대척점에는 아돌프 아이히만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같은 악마 - 어리석은 악마라고 해야할 지 천재적인 악마라고 해야할지는 헷갈린다 - 가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마르틴 루터를 거쳐 에릭 홉스봄까지 이르는 인물들의 역사적 행렬은 이 짤막짤막한 인물담들을 모아 놓은 책의 제목에 왜 굳이 방대하고 복잡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꺼리는 '세계사'라는 골치 아픈 단어를 넣었을까라는, 약간의 우려 섞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준다.
사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139개의 이야기(대부분 인물에 관한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글들, 예컨대 루시타니아 호의 침몰이라든가 1차세계대전 중 독일군 병사와 연합군 병사들이 함께 벌였던 기이한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 사실들에 대한 글도 함께 있기 때문에 '이야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들이 서양사 연구라는 커다란 빵덩어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일견 가볍고 평이해 보이는 이 책의 배후에 깔린 내공의 깊이가 여간 만만한 게 아니라는 점에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저자의 전공분야가 서양사인 까닭에 선정된 인물이나 사건들이 서양사의 범위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아쉬운 면이면서 동시에 믿음직한 면이라 해야 할 것이지만, 철학자, 사상가, 정치가처럼 당연히 포함될 법한 인물들 외에 앞서 소개한 오드리 헵번 같은 배우나 피터, 폴 앤드 메리 같은 팝 가수에 관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는 것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넓게 열린 관심으로 서양의 어제와 오늘을 관찰해 왔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이 넓고 깊음이 그 자체로만 그치는 것이었다면 진가를 발휘하기 어려웠으리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는 법. 저자는 서양사에 대한 넓고 깊은 지식을 '지금 여기'와 연결되는 현재적 관심으로 꿰어 냄으로써 자칫 산만한 지식의 나열에 그칠 수도 있었을 이야기들에 살아 숨쉬는 역사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예컨대 아르헨티나 민중의 한을 표현하는 음유시인 아타우알파 유팡키에 대한 이야기를 "약한 이들 곁에서 노래하기에 정권에게 쫓기는 김장훈에게서 음유시인의 모습"(73)을 보는 것으로 맺는다든가, 아이히만 같은 악의 화신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며 "이 땅의 무수한 '평범한 악'들의 죄상을 끝까지 묻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에 미래는 없다"(79)는 경고를 던지는 것 등이 이 책을 관류하는 현재적 관심의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러한 현재적 관심에 의해 살아 있는 세계사의 무대로 소환되는 오늘의 우리 현실이 단순히 참고 대상의 구실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 물음은 서양사와 '지금 여기'의 우리의 만남이 역사는, 그것도 어리석은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없느니만 못한 교훈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물어보아야 할 지경에 우리가 처해 있는 것 같다는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물음의 발단은 바로 오늘 우리의 문제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다.
2005년 프랑스는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를 미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과서 개편을 위한 법을 제정했었다. 간단히 그 전말만 소개하면 "결국 그 법은 2006년 1월 31일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당시 우파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는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역사가의 몫'이라고 역사의 성찰적 역할에 대한 이해를 피력했다. 바로 지금 여기, 대한민국 대통령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 한마디다."(97)
어리석음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방식을 마르크스는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라고 정식화한 바 있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역사는 비극인가, 희극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