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는 에스파냐의 문호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소설가로 꼽힌다. 그의 <돈키호테>는 근대 소설의 효시로 회자되며, 에스파냐의 언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에스파냐어를 ‘세르반테스의 언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돈키호테>의 큰 성공 때문에 그는 소설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시와 희곡도 많이 썼다. 게다가 그의 다른 소설 작품들마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게 가려진 작품 중에 <모범 소설>이라는 것이 있다. 12개의 단편 소설을 모았는데, 작가로서의 명성이 이미 확고해진 말년에 자신의 역량을 더욱 가다듬어 집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집에 마지막으로 실린 단편은 제목조차 붙이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개들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두 마리의 떠돌이 개 시피온과 베르간사가 있다. 뒷골목을 유랑하기에 이 두 마리는 에스파냐 사회의 다양한 어두움을 목격하며,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은 당대의 에스파냐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이 작품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인물이 있는데, 바로 정신분석의 원조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그는 이 소설의 형식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이 작품이야말로 정신분석의 기원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두 마리의 개 중 한 마리만 주로 이야기하며, 다른 한 마리는 듣기만 하다가 간간이 한 마디 거들 뿐이다. 그 특이한 개들의 대화의 핵심적인 내용은 성(性)적인 것이다. 정신분석 임상 병실의 한 장면이 그대로 떠오른다.
프로이트는 이 작품을 원어로 읽기 위해 에스파냐어를 배웠다고 토로한 바 있다. 게다가 그는 소년 시절에 친한 친구에게 보낸 55개에 달하는 편지에서 자신은 시피온이라는 이름으로 서명하고 친구에게는 ‘친애하는 베르간사’라고 칭하기까지 했다. 작가의 창작뿐 아니라 독자의 독서에도 창의성이 개입되면 창조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