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초창기에 유베날리스라고 하는 풍자시인이 있었다. 생애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그마저 열여섯 편의 풍자시의 내용을 통해 추정한 것에 불과하다. 어느 황제 치하에서 어느 곳으로 유배를 갔는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꽤 권세가 높던 어떤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추방을 당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건대 당대에 상당히 널리 읽히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영향력이 없었다면 단지 무시되었을 것이기에.
그렇지만 출처가 유베날리스의 풍자시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에 회자되는 문구는 꽤 있다. 그중 하나가 ‘빵과 서커스’다. 그는 시민의 표를 얻기 위해 값싼 식량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포퓰리즘 법안을 만들던 정치가들을 풍자하기 위해 그 문구를 사용했다. 로마인들 사이에서 도덕적 기강이 타락하던 사실에 대한 개탄이 깔려 있는 표현이지만 이제는 비슷한 현상을 지칭하는 보편적인 어휘로 정착한 듯하다. 19세기 에스파냐의 지식인들도 자신의 사회를 비꼬기 위해 ‘빵과 투우’라는 말을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보통 이 말은 눈가림의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유베날리스가 풍자한 대상은 대중이었다. 공공사업이나 정책의 탁월성을 도외시하고 즉물적이고 얕은 즐거움으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정치가들에게 현혹되는 대중의 몽매함에 대한 경멸이 ‘빵과 서커스’에 집약된 것이다. 평민은 이기적이며, 그들은 더 광범위하고 본질적인 문제에 눈을 감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도 유베날리스의 경멸로부터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임시 공휴일을 지정하고, 장병들에게 특식과 특별 외박을 ‘하사’하자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졌다는 기사를 접하며 갖게 된 자괴감이다. 해답은 어디에 있으려나? 출처도 모르며 사용하는 유베날리스의 또 다른 문구를 곱씹는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