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히스파니아 출신인 트라야누스는 로마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늘린 황제였다. 로마의 원로원에서는 오현제 중 두 번째인 그에게 특히 ‘최고의 지배자’라는 별칭을 부여했다. 그는 군인 황제로서 군대의 통솔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그리스 북부의 다키아는 물론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 등 서아시아의 많은 영역이 그의 치하에서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업적이 군사적 영토 확장에 국한되었다면 ‘최고의 지배자’라는 영광스런 호칭이 그에게 귀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건설 사업도 벌여 로마라는 도시의 외형을 바꾸어놓았다. 다키아 원정에서 얻은 노획물은 트라야누스 광장을 건설하는 재정적 뒷받침이 되었고, 광장의 핵심부에는 트라야누스 시장이 건립되었다. 세계 최초의 쇼핑몰이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상은 트라야누스의 행정부가 집무하던 종합청사였다는 설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사회복지사업도 벌였다. 그는 ‘알리멘타’라는 사업을 벌여 이탈리아 전역에서 고아와 가난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기금을 조성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교육과 급식까지 책임졌다. 이것 역시 처음에는 다키아 원정의 수탈물이 중요 재원이었지만, 훗날에는 부동산세와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이 사업의 정확한 목적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그렇지만 다키아 원정이 마무리될 즈음 이 사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물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려는 시도가 그 이후에도 두 차례 있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 사업이 갖는 인도적 차원의 의도만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도 정의로운 사람의 예로 트라야누스를 꼽았고, 단테도 <신곡>에서 그를 의인의 반열에 위치시켰다. 실로 사망한 지 2천 년이 지나도록 후대로부터 별 비난 없이 칭찬만 받은 로마의 황제는 그 외에는 없었다. 우리의 일부 정치가들이 새겨들어야 할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