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 함마르셸드는 스웨덴이 배출한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17세기 이래로 스웨덴 왕가의 봉신이었던 선조와 20세기 초에 총리를 역임했던 부친의 정치적 역량은 함마르셸드의 피에도 흐르고 있었다. 경제학자로서, 은행 관리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그는 유엔 총회의 스웨덴 대표가 되었다가 때마침 공석이 된 사무총장에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선출되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최연소 사무총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엔 본부에 사람들이 홀로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명상의 방’을 만드는 등 사소한 개혁도 이끌었지만, 그는 풀기 힘든 굵직한 일들을 해결함으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의 경직된 관계를 완화시켰고, 한국 전쟁 당시 북한에 포로로 억류되었던 미국의 조종사 11명을 석방시키려는 협상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으며, 수에즈 운하의 위기도 잘 타개했다.
1960년 콩고에 내란이 발생하자 전쟁을 벌이던 양측이 유엔에 위기 타결을 의뢰했다. 함마르셸드는 여러 차례 콩고를 방문했는데, 비무장 유엔군에 대한 총격이 발생하자 발포 중지 협상을 위해 또다시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함으로써 목숨을 잃었다. 올해 3월 반기문 총장이 세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하여 그의 죽음을 재검토하도록 지시했듯, 그의 죽음에는 이해관계가 얽힌 광산 기업이 연루되었다는 의혹도 있다. 어쨌든 재직 중 순직한 유일한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그에게 노벨 평화상이 추서되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우리 세기 최고의 정치가”라고 추켜세웠다.
그의 행동은 철저한 지행합일 정신의 결과였다. 그는 “일신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부인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돈으로 국립대학교를 압박해 상아탑의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교육부에 맞선 부산대 교수의 숭고한 자기희생을 보며 나부터가 일상생활의 안락함을 위해 확고한 신념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