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의 서양사람] 자연 도태(?)
생물 종의 궁극적인 목표는 개체 번식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 속에 제한적으로 주어진 먹이를 얻기 위해 종들 사이의 경쟁이 벌어지고, 먹이를 얻기 위해 환경에 잘 적응한 종이 자연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는다. 이것이 ‘자연선택설’인데, 잘못 적응한 종의 처지에선 그것이 ‘자연도태설’이 된다. 이것은 진화론의 작동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다.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시켜 ‘사회진화론’이 등장했다고 설명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잘 적응한 선진국이 부적응 후진국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첨병의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사실은 사회진화론이 생물학적 진화론에 선행했다. 이미 18세기 말에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나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논리를 펼쳤다. 결과적으로 식량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 재앙이 뒤따르게 되는데, 기근과 질병이 인구를 조절해서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근과 질병은 인구를 줄여주는 자연적인 수단이며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지 대책이나 지원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윈은 물론 그와 거의 동시에 같은 결론에 도달했던 월리스 같은 진화론자들이 <인구론>을 읽고 영향을 받았으니 사회진화론은 확실히 생물학적 진화론보다 앞서 존재했다. 그런 영향력의 전파 과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시 구빈법과 같은 복지법안에 반대하는 자들이 맬서스의 이론을 이용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아직도 그 그릇된 이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국내에선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자들이, 국제적으로는 식량 가격을 높게 유지하려고 잉여 식량을 굶는 사람들에게 분배하느니 버리는 것을 택하는 강대국들이. 약자가 죽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라면 그들에겐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는 이론임이 확실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