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요아힘 프뢸리히라는 유대인 청년이 나치를 피해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착했다. 5년 뒤 미국 시민권을 얻을 때 그는 ‘행복하다’는 뜻의 ‘프뢸리히’를 비슷한 의미의 영어로 바꿨다. 그렇게 새로 탄생한 피터 게이는 미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상사의 대가가 되었다.
본디 정치학 교수였다가 역사학에 정착한 게이는 볼테르의 정치학에 대한 연구로 출발하여 계몽주의 전반에 대한 방대한 저서인 <계몽주의의 기원>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계몽주의가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를 도입하여 서양의 정치적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그의 주장이 이제는 통설로 받아들여진다. <바이마르 문화>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화적, 예술적 성취와 그 비극적 운명을 ‘아들의 반역’과 ‘아버지의 보복’이라는 세대 간 갈등 구조, 즉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파악한다.
<바이마르 문화>에서 보인 심리사가로서의 성향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많은 저서로 구체화된다. 프로이트의 전기는 물론 그의 사상이 역사 서술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 그의 펜을 통해 명료하게 다듬어졌다. 5권으로 집필된 <부르주아의 경험>은 심리사 방법론을 동원해 19세기 부르주아의 다양한 정체성과 세계관을 그려낸 대작이다.
<역사학의 문체>라는 책에서는 역사가들의 문체를 분석해 그것이 그 내용과 갖는 관련성을 논했으니, 역사학의 ‘언어적 전환’의 선구라는 헤이든 화이트의 <메타 역사>의 선구이기도 했다. 게이 자신부터가 뛰어난 문체를 구사하는 역사가였기에 그러한 관련성을 예리하게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마르 문화>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의 번득이는 문체를 시늉이라도 내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구가 체화되었던 것 같다. 한글로 글을 쓰면서도 “지금 이 글은 피터 게이 스타일이야”라고 되뇌었던 일이 부지기수다. 일전에 작고하신 그분께 진 학문의 빚에 이 약소한 글로나마 감사한다. 편히 쉬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