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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54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5-07-03 03:04:06
추천수 16
조회수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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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민재 [가입일자 : 2014-10-22]

제목

시가 있는 풍경 54
내용
 






만약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나는 그를 죽이는 중입니다

   잔뜩 피를 빤 선형동물, 동백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그는

떨어져 꿈틀대는 빨간 벌레들을 널름널름 주워먹었습니다

나는 메스를 더욱 깊숙이 박았지요…… 마침내 그의 흉부가

벌어지며 동백꽃이 모가지째 콸콸 쏟아집니다 피 빨린 해골

들도 덜걱덜걱 흘러나옵니다 엄마 목에 매달린 아가 해골이

방그레 웃습니다 앉은뱅이 해골이 팔다 남은 사과를 내밉니

다 사과는 통째 곯았습니다. 그가 번쩍, 눈을 부릅뜹니다 흘

러나온 것들을 단숨에, 뱃속에 도로 집어넣습니다…… 나는

날마다 그를 죽일 궁리를 합니다 비대해져 살갗이 몸에 맞지

않게 된 그는 쪼가리 살갗을 들고 매일 내 방으로 옵니다 나

는 그의 몸피에 새로 난 살갗을 재봉질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이 일로 생계를 꾸려가지요) 그의 몸은 가속으로 거대

해져갑니다. 숱한 살갗을 어디에서 벗겨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싱싱한, 피냄새가 묻어 있습니다…… 오늘밤 나는

그를 죽일 겁니다 그는 내게 남은 마지막 진피를 원할 테지

요 달콤한, 자장가를 부르며 사타구니 살갗을 벗겨내겠지요

내일이면 그는 핑크빛 합성피부를 가져와 손수 박음질해줄

겁니다 리드미컬한, 노동요를 부르며, 나는 보너스를 받겠지

요 한아름 붉은 동백꽃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또 한번 그를 죽였습니다

   나를 고소할 수 있는 법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 혀는,

그의 입 속에, 비굴하고 착하게 갇혀 있으니까요.


 


※ 출전: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김선우, 창작과비평사, 2000
※ 그림 출처: 자주 가는 골동품점,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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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항 2015-07-03 07:22:05 채택된 댓글입니다.
답글

시도 무섭고 그림도 무섭고
시도 어렵고 그림도 어렵고.....~.~!! (당췌)

이종호 2015-07-03 09:47:01 채택된 댓글입니다.
답글

한 여성의 육체적 탐닉을 표현한 시 같기도 하고
불루칼라의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억압된 현실속에서 저항할 수 없는 암울한
피지배 계층의 울부짖음 같기도 하고...

그림이 참 우아(?)하네요..
난 저런 그림이 조트라...모딜리아니두 좋구...고야두 ..

근데 시는 행과 열의 적당한 띄어쓰기와
여백으로 숨도 쉬어가면서 읽어야 하는데
다닥다닥 붙여 씌어져(모바일버젼과 pc버젼의 한계)
읽는 재미와 생각하며 음미하는 상상력이
마이 반감되네요...^^♥

이민재 2015-07-03 12:04:30

    시인이 30 이전에 이러한 시를 쓴 것이고 시집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옮겨 온 것으로(시인이 각고의 산고 끝에 얻은 창작품을 보기 좋으라고 난도질을 하는 것은 '시인에 대한 예의' 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지면상의 원문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이곳에 옮긴 것입니다. 이 점은 좋게 봐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PC의 화면상으로 보니 조금 답답한 구석은 있네요.

휴대폰 모바일 버전은 아직 미완성으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첫 시도에 실패를 한 것은 내리고 두번째 시도 끝에 올린 글이 이 형태로 나왔습니다.

송수종 2015-07-03 12:39:02
답글

하~ 저도, 글과 그림이 무섭다는 느낌이들고 행과열,여백이 아쉽고, 미재님의 설명을 보니 이해는 갑니다. ^^

이민재 2015-07-03 14:28:42
답글

더 하나 사족을 가져다 붙여 봅니다. 동류의 길을 가는 동료 안도현 시인 및 나희덕 시인 등이 '김선우 시인의 글 재주를 아낀다.' 라는 이런 취지의 글을 문학 계간지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문학을 잘 모르는 문외한이다 보니 뭐라 시를 평할 입장은 못됩니다만 참신한 시어와 어딘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면서도 감성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고만고만한 시를 쓰는 시인이 대다수인 문단(한 독자가 바라보는 시각임에 불과합니다)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위의 김선우 시인(여성)의 시세계가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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