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나는 그를 죽이는 중입니다
잔뜩 피를 빤 선형동물, 동백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그는
떨어져 꿈틀대는 빨간 벌레들을 널름널름 주워먹었습니다
나는 메스를 더욱 깊숙이 박았지요…… 마침내 그의 흉부가
벌어지며 동백꽃이 모가지째 콸콸 쏟아집니다 피 빨린 해골
들도 덜걱덜걱 흘러나옵니다 엄마 목에 매달린 아가 해골이
방그레 웃습니다 앉은뱅이 해골이 팔다 남은 사과를 내밉니
다 사과는 통째 곯았습니다. 그가 번쩍, 눈을 부릅뜹니다 흘
러나온 것들을 단숨에, 뱃속에 도로 집어넣습니다…… 나는
날마다 그를 죽일 궁리를 합니다 비대해져 살갗이 몸에 맞지
않게 된 그는 쪼가리 살갗을 들고 매일 내 방으로 옵니다 나
는 그의 몸피에 새로 난 살갗을 재봉질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이 일로 생계를 꾸려가지요) 그의 몸은 가속으로 거대
해져갑니다. 숱한 살갗을 어디에서 벗겨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싱싱한, 피냄새가 묻어 있습니다…… 오늘밤 나는
그를 죽일 겁니다 그는 내게 남은 마지막 진피를 원할 테지
요 달콤한, 자장가를 부르며 사타구니 살갗을 벗겨내겠지요
내일이면 그는 핑크빛 합성피부를 가져와 손수 박음질해줄
겁니다 리드미컬한, 노동요를 부르며, 나는 보너스를 받겠지
요 한아름 붉은 동백꽃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또 한번 그를 죽였습니다
나를 고소할 수 있는 법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 혀는,
그의 입 속에, 비굴하고 착하게 갇혀 있으니까요.
※ 출전: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김선우, 창작과비평사, 2000
※ 그림 출처: 자주 가는 골동품점, 작자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