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츠 공의회에 참석하는 지기스문트)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들은 인간의 창의성을 새롭게 부각시키면서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고전을 발굴하고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독창적인 글을 지어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책상물림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위 성직자나 정치가의 비서로 연설문을 대필했고, 외교관의 공무도 수행했다. 그들에게 학문이란 추상이 아닌 실천이었다. 선을 의도하는 것이 진을 아는 것보다 훌륭한 일이었다.
피에르 파올로 베르제리오는 그런 르네상스 지식인의 전범이었다. 수사학과 교회법의 연구자였던 그는 페트라르카의 서사시 <아프리카>를 최초로 출판하며 저자에 대한 평전도 썼다. 한편 가톨릭교회의 대분열을 종식시킨 콘스탄츠 공의회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기스문트를 보좌해, 교황이 세 명이나 존재하던 당시 마지막까지 사임을 거부하던 교황 베네딕투스 13세로 하여금 그 지위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프라하에서 얀 후스의 이단이 문제가 되었을 때엔 가톨릭교회의 대표로 연설도 했다.
르네상스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입신양명만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바의 고귀한 이상을 실천하려는 염원으로 그 길에 나섰던 것이다. 베르제리오는 청소년이 자라는 과정에서 꼭 익혀야 할 인문학과 고귀한 태도에 대한 글을 남겼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어린이 문학상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이 그 글이 시간을 초월해서 갖는 중요성을 증명한다.
그에게 인문학이란 자유인에게 걸맞은 것으로서, 미덕과 지혜를 획득하고 실천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범속한 기질의 소유자에겐 이득과 쾌락만이 존재의 유일한 목표일 것이나, 고귀한 본성을 타고난 사람들에겐 도덕적 가치와 명성이 그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는 자라는 과정에서 언제나 그 정신을 유지하도록 배워야 한다. 더 큰 권세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공직자들이 그런 교육을 받기에는 늦었을까? 베르제리오는 늦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말하기는 한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