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티스타의 영역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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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파스 농민 반란
멕시코 남쪽에 위치한 치아파스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주인데, 마야 문명의 후예, 즉 멕시코의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곳이 1994년 1월1일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날이 ‘북대서양 자유무역 지역’, 즉 나프타가 발효하는 날이었고, 그날에 맞춰 저항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원주민이 주축이 된 저항 세력은 20세기 초에 정당한 토지 개혁을 내세우며 혁명을 이끌었던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사파티스타’라 부르며, 그 조약은 “원주민에 대한 사형 선고”라고 주장했다.
식민지 시절 에스파냐의 통치에 내포된 유럽 적통의 순혈주의에 반대하며 멕시코가 내세운 것이 ‘메스티소’ 민족주의였다. 그런데 ‘혼혈’이라는,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단어를 당당하게 내세운 그 민족주의에서조차 마야 문명의 후예인 원주민, 인디오는 배제되어 있었다. 멕시코 정부의 정책에 의해 유카탄 반도에서 이곳으로 이주했음에도 ‘토지는 공동의 소유’라는 마야의 전통을 고수하던 그들이 처음으로 토한 저항의 목소리였다.
당시 수많은 부정의 혐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올라 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인 카를로스 살리나스는 군대를 동원하여 치아파스 공격에 나섰다. 토지를 대자본에 사유화시키고,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지역 농민의 삶을 말살하려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군대를 동원한 국가의 공권력에 맞선 원주민의 저항은 바위에 던져진 계란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이 전면적 승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승리를 거두었다.무장 저항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대의명분을 널리 알려 비정부기구의 국제적인 연대를 이끌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고전적인 무장투쟁을 능사로 여기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군사 대립이 아닌 정치입니다. 우리는 듣기 위해 싸웁니다.”
우리도 모두 함께 듣고픈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