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폼페이 유감 |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 |
2015-05-20 19:23:55 |
|
|
|
|
bbs_img |
|
|
|
| |
글쓴이 |
|
|
조한욱 [가입일자 : 2010-05-05] |
제목 |
|
|
폼페이 유감 |
내용
|
|
10년 전쯤 폼페이 유적을 직접 탐방할 귀한 기회가 있었다. 인근 나폴리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의 일정이 끝난 뒤 주최 측에서 참가자들을 배려해 만든 자리였다. 남쪽의 폼페이로 향하는 소형 버스의 오른편 차창 밖으로는 아름다운 나폴리만의 풍광이 펼쳐지는데 왼쪽으로는 베수비오산이 보인다. 순식간에 화산재로 폼페이를 덮쳤던 바로 그 화산인데, 아직도 휴화산으로 분류된다.
‘로마의 소나무’에 못지않게 곧게 뻗어 하늘을 선망하는 우람한 소나무들이 우리를 맞는다.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폼페이 유적지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 가이드의 자부심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바둑판처럼 잘 구획된 이 도시가 이천년도 더 지난 그 옛적에 기획된 것이라니.
오백년 전쯤 우연히 폐허가 발견되어 복구가 계속 진행되어온 결과 더욱 생생하고 세밀하게 옛 로마의 영광을 음미할 수 있었던 그곳에서 여러 상념에 젖는다. 빙켈만, 괴테, 스탕달, 텐, 마크 트웨인 같은 인물들마다 이곳의 기억을 가슴에 새기고 다시 방문하게 되기를 원했다는 기록은 헛된 수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도피할 겨를조차 없이 쏟아져 내린 부석과 화산재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역사가로서의 직업적인 의식과 상충한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로마인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 폼페이는 오늘날 더 큰 명성을 얻는 장소가 된 것이 아닐까.
폼페이엔 세계 도처에서 관광객이 찾아온다. 미국 노부부들로 구성된 탐방단 앞에서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가이드가 정중하게 설명한다. 그때 한 무리의 동양 청년들이 그들을 밀치듯이 무례하게 지나쳤다. 그 가이드의 입에서 한국어가 나왔다. “천천히.” 그럼에도 계속 지나가는 그들에게 또다시 말했다. “천천히!” 이번엔 더 큰 분노가 실려 있었다. 사실 그 청년들은 중국인이었으나 나는 항변하지 못했다.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