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의 서양사람] 이력서 쓰기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어"라는 시에서 천명 중에 두명 정도가 시를 좋아할 뿐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는 "시의 모차르트"라고 불리며 저명한 산문 작가들에 버금가는 독자층을 확보했다. 1996년에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그의 시는 역사적 맥락과 개인적 배경을 반영하면서도 인간 실재의 단편들을 조명하게 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2차 대전의 막바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의 데뷔 시집에 "레닌"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을 정도로 그는 폴란드 인민공화국의 공식적인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충실하게 따랐으며 "폴란드 노동자 연합당"에 가입하기도 했다. 당시 스탈린의 노선을 따르던 폴란드 정부에서는 네명의 가톨릭 신부에게 미국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워 크라쿠프의 군사법원에 세웠다. 공포정치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폴란드의 작가 연맹에서 그 판결에 동의했고, 심보르스카도 서명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점차 폴란드 정부의 정책에 환멸을 느낀 그는 초기의 정치적 작품들을 철회하며 반정부 세력을 규합하는 활동을 벌였다. 폴란드 공산당 정부가 작가들의 독립적인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더 타임스>의 보도에 대해 정부 지원을 받는 작가들이 항의 서한을 보냈을 때, 이번에 심보르스카는 그들에 반대하며 언론의 자유에 힘을 보탰다.
프랑스 삼색기의 주제를 영화화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어 삼부작 중 <레드>를 만들었을 정도로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시를 썼고, 죽음의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젊은이들의 규격화된 이력서 쓰기도 소재로 사용해 현대 사회 젊은이들의 정신적 황폐를 그렸다. "가치보다 가격/ 내용보다 제목/ 네가 어디로 가느냐보다/ 신발의 치수가 중요해."
발표한 작품은 350편 정도로 그다지 많지 않다. 왜냐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 "집에 쓰레기통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