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머런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충직한 선장과 악덕한 선주를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그러나 그 근거는 올바른 사실이 아니었다.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는 화이트스타 선박회사를 건실하게 경영했다. 경쟁을 벌이던 큐나드 선박회사에서 루시타니아와 모레타니아라는 두 척의 대형 호화 유람선을 출범시키자 이스메이는 그에 대응하여 5년에 걸쳐 최고의 기술을 동원해 세계 최대의 선박 타이타닉을 만들었다.
이스메이는 타이타닉의 첫 출항에 동승했다. 그 운명의 침몰 이후 그의 사회적 지위도 함께 가라앉았다. ‘여성과 어린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도외시하고 살아 돌아온 부도덕한 선주라는 오명에다가 부족한 구명정에 대한 책임론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메이는 끝까지 승객들을 구명정에 태우고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뒤 마지막 구명정의 마지막 자리에 탔음이 재판에서 밝혀졌다. 구명정의 숫자 역시 당시의 기준에 부합했다. 그가 받은 손가락질의 가장 큰 원인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이끄는 언론 족벌의 보도였다. 이스메이와 사이가 좋지 않던 허스트는 자신의 신문에 희생자 명단을 실으며, 생존자 명단에는 이스메이만을 기재하는 식의 악의적 보도를 반복했다. 사실 이스메이는 선원들의 부인을 위해 막대한 돈을 기부했고, 오명 속에서도 타이타닉에 관해 어떤 한마디도 입에 담지 않은 채 여생을 보냈다.
실상 타이타닉의 침몰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존 스미스 선장이었다. 빙산이 떠돌아다닌다는 무전을 수없이 받고도 별 조치 없이 잠에 들었던 그는 충돌 이후에도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배와 운명을 함께했다는 이유로 그는 영웅으로 기억된다. 사악한 선주에 비교되는 충직한 선장이라는 주제는 캐머런이든 누구든 영화감독으로서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원인 규명은 도외시하며 피해자들을 범죄자인 것처럼 백안시하는 이 정권의 잔인함이 그 뒤바뀐 운명에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