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에게 재앙을 초래했지만, 유럽에도 혼란을 가져왔다. 에스파냐의 국왕 페르디난도와 여왕 이사벨라의 후원을 받아 떠난 항해였지만, 경쟁국 포르투갈은 눈앞에 펼쳐진 신천지가 더해줄 막대한 국력 신장의 잠재력을 묵과할 수 없었다. 포르투갈 국왕은 콜럼버스가 발견한 땅은 포르투갈의 영토라는 위협조의 편지를 에스파냐에 보냈다.
1479년 양국이 맺어 교황청에서 승인한, 카나리아 제도 남쪽의 모든 땅은 포르투갈에 속한다는 조약이 근거였다. 포르투갈은 함대를 파견해 그 지역을 점령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포르투갈에 대적할 군사력이 없었던 에스파냐의 공동 국왕은 외교력에 의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에스파냐 출신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주재로 맺어진 것이 토르데시야스 조약이었다.
카부베르데 제도 서쪽 370해리에 그어진 가상의 선을 기준으로 그 서쪽은 에스파냐가 차지하고 동쪽은 포르투갈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었다. 교황청에서는 막강한 두 경쟁 국가의 지지를 모두 얻기 위해 세계를 나눠줬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메리카 대륙은 에스파냐의, 동방의 향신료 교역로는 포르투갈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은 그들의 ‘새로운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1500년 포르투갈인 카브랄이 인도로 향하다가 표류하여 브라질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이 그 경계선의 서쪽에 있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브라질이 유일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던 연유다.
서양 유수의 문화사 개설서는 이곳에서 제수이트 교단이 과라니족에 성공적으로 포교하여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끝이다. 영화 <미션>은 그 이상적 공동체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이해관계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그 이후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영화에서도 평화의 길과 전쟁의 길의 기로에서 대립하는 두 신부만 영웅적으로 부각될 뿐 원주민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