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유럽의 인쇄소에서는 직공을 물건처럼 주문했다. 로버트 단턴이 밝히듯, 스위스의 뇌샤텔 인쇄협회에는 직공 “두 개를 아주 나쁜 상태로 보내서 그것을 반송해야 했다”는 내용이 적힌 편지가 보관되어 있다. 그것은 이후 카를 마르크스가 소모품에 대해 내린 정의를 예견케 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에서 소모품이란 인간의 노동이 산출하는 상품이나 용역으로서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마르크스는 노동 자체가 소모품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고 설파했던 것이다.
이곳에서는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이 학문의 탈을 쓰고, “조선인 위안부가 군수품이었다면, 강간당한 네덜란드 여성이나 중국(여성)은 전리품”이었다는 논지를 펼친다. 그 책이 갖는 학문적인 결함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단적인 예는 자료의 신빙성에 대한 분별력의 결핍이다. 역사가들은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과거를 재구성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하는 것이 있다. 과연 그 기록이 객관적인 사실을 뒷받침해줄 만큼 신빙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사료 비판이라 말하며, 그것을 통과해야지만 그 기록은 비로소 사료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군부의 자료가 아무리 양적으로 풍부하다 해도 신빙성을 담지하지 못하듯, 성노예 할머니들에 관한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자료는 사료가 되기에 미흡하다.
마르크스와 박유하가 인간을 물건에 빗댔지만, 비유는 비유일 뿐 유사성은 거기까지이다. 마르크스는 거대한 비인간적인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에 대한 연민으로 그 경제학의 법칙을 이끌어냈다. 반면 박유하의 책에서는 군국주의의 위세를 뒤에 업고 당당하게 인권 유린을 자행한 전범들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해 또다시 인격 살해를 범하는 인간 상실의 면모밖에 드러나지 않는다. 판매 금지를 명한 재판부의 평결은 공적 의식이 결여된 이 책의 야만에 대한 아주 약한 조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