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곱시. 쿠바 시인의 누추한 아파트에 벨이 울렸다. “누구요?” “전보가 왔습니다.” 위험을 직감한 남편은 문을 열지 말라 했으나, 어차피 문을 부수고 들어올 그들임을 알기에 아내는 문을 열었다. 십수명의 무장 요원들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수색을 한 뒤 부부를 압송했다.
카스트로의 혁명에 지지를 보냈으나 전체주의적으로 바뀌는 체제를 보며 환멸을 느낀 시인 에베르토 파디야는 비판을 함축한 시집을 낸 바 있었다. 쿠바 정부는 아내 벨키스 쿠사 말레의 시집 <전선의 여성들> 역시 탄압했었다. 이들이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는 정보를 획득한 정보부의 조치였다.
이 일은 쿠바를 넘어 세계 지성의 관심을 끌게 된 사건으로 이어졌다. 체포된 지 한달이 지나 쿠바 정부에서는 파디야가 문인들 앞에서 자아비판을 하고, ‘반혁명’ 작가들을 고발하게 만들었다. 고발 명단에는 동료 문인은 물론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마저 들어 있었다. 이른바 ‘파디야 사건’은 참여에 적극적인 세계의 지식인들을 고뇌하게 만들었다. ‘평등’을 내세우는 사회주의 체제를 단지 그 이유로 계속 옹호해야 하는가? 비인간적 인격 말살의 행태를 묵과할 것인가?
장폴 사르트르, 수전 손택,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옥타비오 파스와 같은 문인들이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의 신문 <르몽드>에 카스트로를, 그리고 파디야의 굴욕적 재판 과정을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실었다. 그들은 파디야의 자아비판보다는 시인의 언어인 시에 실린 진실의 힘을 더 믿었던 것이다. “최고의 시는 언제나 간수의 등불 밑에서 태어난다”고 말했던 시인 부부는 결국 석방되었다.
법치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일개 비리 사학에 의해 이에 버금가는 폭력이 이른 새벽부터 자행되었다. 상지대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언어도단의 상황이 법의 처단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관련 부서의 묵인 아래 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