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정조, "불통" 박근혜…"한국 지배층, 아직 멀었다"
[프레시안 books : 저자, 책을 말하다] "세기의 서" 네 번째 <18세기, 왕의 귀환>
"민음 한국사" 시리즈는 근래 나온 한국사 책들 중 손꼽을 만한 수작(秀作)이다. 100년 단위로 역사를 재구성해 "세기의 서(書)"로도 불리는 시리즈로, 인문기획집단 문사철에서 기획·편저했다.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1년 사이에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을 시작으로 세 권을 선보였다. 그에 이어 네 번째 책 <18세기, 왕의 귀환>(민음사, 이하 <18세기>)이 이달 출간됐다.
"세기의 서"에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깊이와 대중성이라는, 엇갈리기 십상인 두 가지 지향을 조화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고 그것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이다. 중견 연구자들이 해당 시기를 분야별로 집필해 깊이를 확보하고, 오랫동안 역사책을 만들어온 문사철에서 이를 조율해 대중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옛 지도, 그림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에 더해 다양한 그래픽 자료를 덧붙여 독자가 책의 묵직한 내용을 딱딱하게 느끼지 않도록 만들려 한 노력도 눈에 들어온다.
18세기는 그간 TV를 비롯한 대중 매체에서도 많이 다룬 시기다.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면이 있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이 시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18세기>를 함께 쓴 8명의 연구자 중 한 사람인 노대환 동국대 교수와 "세기의 서"를 총괄하는 강응천 문사철 주간을 17일 광화문 부근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유다. 다음은 그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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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위기 앞에서 제 살 깎은 조선 기득권 세력…한국 지배층, 따라가려면 멀었다
▲ 주교사가 관리하던 배다리.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프레시안 : 단순한 질문을 하나 던지면, 18세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왕의 귀환"은 재앙이었을까 축복이었을까.
강응천 : 축복이라고 하면 어폐가 있지만 재앙은 아니었다고 본다. 시쳇말로 임진왜란 때 망해버렸어야 할 나라가 계속 가는 바람에 근대화에 뒤처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안 망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짓누르는 것만으로 300년을 더 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지배층은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자기희생적인 개혁을 조선의 지배층은 해냈다. 대동법 같은 것을 보면 세금의 기준을 토지로 삼자는 건데, 지금으로 치면 부동산과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내게 하는 엄청난 부자 증세인 셈이다. 대동법을 놓고 한 100년에 걸쳐 싸웠지만 결국 해냈다. 송시열처럼 반대하던 사람들조차 나중에는 돌아서서 찬성한다. 느낀 것 아니겠나.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선은 역시 위대한 나라였어", 이렇게 볼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쉽지 않은 개혁을 해낼 수 있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다 죽어가던 왕조를 어떻게 되살렸는가를 짚어보면 앞에서 말한 공론 정치, 소통 메커니즘, 그리고 서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돼 있었던 중앙 집권적 군주 국가의 시스템 등이 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