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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빌 학살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4-12-11 02:39:53
추천수 33
조회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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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조한욱 [가입일자 : 2010-05-05]

제목

샤프빌 학살
내용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정책을 강제하기 위해 만든 장치의 하나에 ‘통행법’이 있었다. 식민지 건설 초기부터 시행되어 점차 정교하게 세칙을 강화시킨 이 법에 따르면 흑인은 물론 유색인종은 그들에게 지정된 구역을 벗어날 때 항상 ‘통행권’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일종의 국내 여권인 이 신분증에는 사진과 지문을 포함한 신상 명세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백인은 어떤 흑인에게든 제시를 요구할 수 있다. 거부는 체포로 이어진다.

 


법에 의해 다스리는 것이라 하여 ‘법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1960년 샤프빌의 경찰서 앞에 수천명의 흑인이 모였다. 통행권을 지참하고 있지 않으니 체포해 가라는 시위였다. 군중이 늘어나면서 평화롭고 축제 같던 분위기가 점차 격앙되어갔다. 마침내 기관총까지 동원한 경찰의 총격이 시작되었다. 전투기까지 저공비행하며 군중을 해산시켰다. 기껏해야 돌멩이를 들었을 뿐인 시위대 69명이 사망했는데, 그들 대다수는 등에 총을 맞았다.

 


국제적인 비난을 받은 이 사건 이후에도 남아프리카 정부에서는 영연방에서 탈퇴하면서까지 인종차별정책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냉전 체제 속에서 남아프리카를 자신의 진영에 포함시키려던 미국을 비롯해, 이곳 자원에 탐을 내던 서구 강대국의 막후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정부에 저항하던 흑인 단체에서는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저항에서 벗어나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선회했다. 그들의 노력에 힘입어, 그리고 국제 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통행법’은 1986년에 철폐되었다.

 


이후 샤프빌은 흑인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학살이 있었던 3월21일은 196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지정되었고, 1994년부터는 남아프리카에서 ‘인권일’로 기념된다. 1996년 12월10일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새로 만든 감회 어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을 비준했다. 샤프빌이 서명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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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훈 2014-12-11 08:46:09
답글

앗 교수님..안녕하신지요 오랜만에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쁜 따님도 잘 있는지요? (아 총각이고 싶따~~ ㅡ,.ㅡ;;)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정정훈 2014-12-11 09:27:38
답글

요즘은 사람이 어느정도까지 잔인해질수 있는지 참 감이 안옵니다!!
남아프리카 역사를 보면서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는 인종차별은 언젠가는 끝이 날까요?
지금 현실은 같은 인종끼리도 차별을 일삼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퍼 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yhs253@naver.com 2014-12-11 19:07:49
답글

숨쉬기 힘들다고 하는데도 흑인만 보면 뒤에서 목뼈를 부러트려 죽이고,
손이 주머니속에 있다고 흑인만 보면 총을 난사해 죽이고,
테러범이라고 무지막지하게 고문하는,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면 ,
돈이 많아도 미국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는,,,

이웅현 2014-12-12 05:44:37
답글

어릴적 놀라웠던 아파르트 헤이트의 나라...남아공이었는데..정말 그런데가 다있나 생각했었지만 이제와서 우리 한국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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