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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거기
자유자료실 > 상세보기 | 2014-10-31 23:24:27
추천수 31
조회수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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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나귀형 [가입일자 : 2013-08-19]

제목

거기서 거기
내용

 

 

 

날씨가 추워졌다.

농촌에서 겨울이 다가온다는 건,

무료해진다는 것,

무척 편한 마음으로 게을러진다는 것.

해가 갈수록 나는 게으름에 익숙해진다.

사실....

그래서인지 더

겨울이 좋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데,

대책 없이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데

이 녀석들은 아직 적응이 안 되나 보다.

집안에만 있다는 게 

갇혀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데

틈만 나면 밖을 동경한다.

 

 


 

문이 열린다.

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미닫이 문도 있고 여닫이 문도 있다.

하나가 열리면 또 하나의 문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을 때 알아서 열어주고 닫아 주는

자동문은 없다.

내 집이 시골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다 그렇다.

 


 

나가 봤자 별 볼 일 없다.

똥 누고 오줌 싸는 게 약간 시원할 뿐

거기서 거기.

다리만 아프다.

 


 

별 다를 것 같지만,

별 거 없다.

먹을 것도 없다.

 

 


 

며칠 전 군수님의 편지를 받았다.

전에 살던 광주광역시 서구청장님도 편지를 보냈다.

뜯어보지도 않고 잊고 지냈다.

가끔 있는 흔한 일이라서.

군수님이 궁했나 보다.

구청장님도 급한가 보다.

 

오늘은 비도 오는데

10월의 마지막 날,

세금 내는 날.

오늘을 넘기면 몇 푼을 더 보내줄 수 있는데

얼마나 궁할까 싶어 하루라도 빨리 송금해 주기로 했다.

씨발...

세금이 너무 많다.

 
 

전기료, 통신료, 전화료 같은 거야

뭔가 서비스를 제공 받았으니 당연히 줘야 하는 것이라 불만이 없지만,

군수님은, 구청장님, 나랏님은,

지난 한 달간, 지난 1년간 나한테 뭘 해 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받은 게 없다.

그런데도 아무 설명도 없이 숫자만 적힌

지로용지만 달랑 보냈다.

이건 예의가 아니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달라는 놈은 한 번이겠지만,

내는 사람 입장에선.

달라는 놈도 많고 종류도 너무 많다.

청구서가 한 뭉큼.

따질 시간이 없으므로...

우선 내고....

나중에 따져야겠다.

다시 생각날 때.

 

 


 

멧돼지 님이 두어 차례 수확하고 가신 후라

남은 게 별로 없을 터.

주말에 비가 온다기에

어제 고구마를 캤는데 줄기는 치렁치렁 요란스럽게 자랐다.

막상 들춰보니 달린게 없다.

그나마 달린 것도 ....

달린 거라 말하기도 부끄럽다. 

 

 


 

농장 규모가 있다 보니 하루에 다 캐기 힘들어,

아니, 오늘 다 하면 내일 할 일이 없어질까봐 

이틀로 나눠 캤는데,

잘 말려놨다 박스에 담아 놓으려 했는데

비에 젖어부럿다.

 


 

우리 동네 농협에선,

커피가 공짜다.

이런 게 시골 인심.

 


 

내가 중학교 다닐 때던가.

콤바인이라는 편리한 기계가 생겨서

아버지 따라 농사짓는 일이 참 편했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 살면서 그 콤바인을 본다.

세월이 얼마 전 기억처럼 참 더디게 가고 있는데

내가 먼저 늙어버린 것은 아닐까.

 

 


 

낫으로 벼를 베어 칼퀴 달린 기구(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에 낫알을 털어내

PP포대에 담아 도로로 지어 나르고,

아침 일찍 도로변에 널었다 저녁에 다시 모아 놓고,

다음 날 그 다음날도 말렸다.

다행히 날이 계속 좋으면 며칠 만에 건조시킨 것을 

다시 풍구질해 알곡만 골라 40킬로 포대에 담아 리어카로 운반한 것을

다시 경운기에 실어 수매장으로 갔는데

지금은 한 방에 끝난다.

 

다만,그때랑 다른 점은,

수매해도 별 볼 일 없다는 것.

남는 게 없다는 것.

 

 


 

그러거나 말거나....

이 세상은 1번만 잘 사는 세상.

1등도 아닌데 1등이 잘 살길 밀어주는 인심 좋은 세상.

다음에도 1번이 잘 살 세상.

낙이 없다.

 

좋은 맘으로 살아야 하는데

잠시 흥분했는지

쌀 사는 것을 잊어부렀다.

오늘 나갈 때 사려고 며칠 전부터 생각해 뒀는데

그게....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생각난다.

쌀이 없는디....

 


 

 

이 녀석들이 알면 잔소리 무척 해댈 텐데....

좋게 넘어가진 않을 텐데....

 

 


 

며칠 전 사물놀이 쟁이의 북 만드는 일을 도와 주고

거기 뒹굴던 북을 인건비 대신 받아왔는데

보고만 있어도 좋다.

배가 불러야 잘 사는 건 아니다.

 


 

따서 입에 몰아 넣지 않아도

보고만 있어도 좋다.

 


 

경운기가 이동 중 하필이면 딱 저기서 고장난 채 

5년 인지, 6년 인지 그 자리에 있고,

한가한 겨울 어느 날엔가

따뜻한 햇살 받으며 한가한 시골길을 타박 타박 운동삼아 타기 위해

자전거를 사 옆에 세워 두었는데

비닐 덮개로 덮힌 채 몇 년을 그대로 있다.

올 겨울엔 탈 일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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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pialla@empal.com 2014-10-31 23:40:31
답글

누룽지 같은 구수한 글

잘 읽었습니다.

김주항 2014-11-01 00:58:20
답글

전원 생활의 여유가 한껏 느껴지네요....^.^!!

이중균 2014-11-01 09:01:35
답글

사진도 좋고 글은 더욱 좋습니다.

박병주 2014-11-01 15:24:33
답글

강아지가 강아지 등을 타고있네유
야! 거기서!거기!
이렇게 알고 들어왔씀돠
ㅠ ㅠ

yhs253@naver.com 2014-11-01 18:15:05
답글

시골에서 벼 수확한후 탈곡기를 발로 밟아 윙윙소리내며 낱알이 떨어지는것을 보는 농부의 흐뭇한 표정이 기억 납니다...

이수영 2014-11-01 19:11:18
답글

여유로와 보이네요 ㅎ

최대선 2014-11-02 16:34:37
답글

이런 글 참 좋습니다..
간만에 잘 보고 가네요.
실은 여잔 다 거기서 거기로 보고 들어왔...
반성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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