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만큼 가을에 잘 어울리는 악기가 있을까요?
가을처럼 쓸쓸한 이야기의 와호장룡은 중국 전통 악기와 함께 첼로를 배경음악 연주에 사용하여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는데, 중국 영화 특유의 호들갑이나 경망스러움이 배제된 차분하고 정숙한 영화라서 좋아합니다. 중국 사극에 흔한 고관대작의 잔뜩 무게 잡는 연기나 화면을 도배하는 장예모류의 화려한 색채 따위도 없고요.
빈 부분을 억지로 채워 넣지 않고 동양화의 여백 마냥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굳이 그 여백을 채워주는 것이 있다면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훌륭한 배경음악뿐...
와호장룡 OST #1 -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빼어난 미모는 아닌데 미소가 참 아름답습니다. 원래 이 영화의 최고 스타는 장쯔이였죠. 그런데 보면 볼수록 주윤발과 양자경의 원숙한 모습에 더 눈길이 가고 있습니다. 손 한번 살짝 잡아줬다고 이런 미소를 지울 수 있는 여인이란 존재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옥교룡이 훔쳐간 청명검을 되찾은 이모백이 밤중에 수련하고 있는 모습을 유수련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향한 대상은 분명 있는데 그 실체가 뿌옇고 희미하여 도무지 손에 잡히지는 않는 신기루 마냥 이모백의 모습을 아웃 포커스로 잡아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잠시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이모백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의 그런 모습을 인식하고는 눈길을 살짝 아래로 거둡니다. 그리고는 가벼운 미소를 일순간 짓고 다시 일상의 태도도 되돌아오는데 그제서야 수련의 존재를 알게 된 이모백과 대화를 나눕니다.
보고 보고 또 보느라 스토리나 배우들의 대사에 훤해져서 거의 외울 지경이 되면 이런 부분을 찾아내서 감상하는 맛에 보는 영화입니다. 사실 이런 재미를 주지 않는 영화라면 소장할 가치가 없습니다.
여행 중 대나무 숲의 쉼터에서 잠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주대인과 양소저.
이 영화의 엔딩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죠.
타악기는 펑펑 두드려야 제맛이고
관악기는 벙벙 울려대야 제맛이듯이
현악기는 벅벅 긁어대야 제맛이죠.
아주 힘찬 활짓은 아니지만 살살 긁어대는 현의 맛이 제법 살아있는 곡입니다.
첼로 연주는 요요마입니다.
와호장룡 OST #9 - Desert Capriccio
무당산에서 옥교룡이 허공에 몸을 던지던 장면의 곡이고...
이 영화의 애절함이 가장 잘 묻어나오는 곡입니다.
와호장룡 OST #13 - Farewell
엔딩 크레딧 곡입니다.
와호장룡 OST #14 - A Love Before Time
노래는 Coco Lee(이민, 李玟)
[부록] 제가 좋아하는 무협영화 3대 검객입니다...ㅎ
No.3 - 무당 고수 이모백
무술 전문배우가 아닌데도 존재감만으로 강호대협의 이미지를 시전하는 윤발이 형님.
No.2 - 은퇴 관리 연적하
이제는 고인이 되신 분이죠. 어검술은 기본이고 깨문 손가락의 피로 태극무늬를 손바닥에 그려 넣고 "천지무극 건곤차법" 이라는 주문을 외치면서 장풍을 날려대던...
No.1 - 남해 정인
백일도, 천일창, 만일검.
도를 익히는 데 백일(대충 손에 쥐고 휘두르면 무기 구실을 한다는 의미) 걸리고
창을 익히는 데 천일 걸리고
검을 익히는 데 만일 걸린다는 만병지왕 검.
그래서 주인공이 장이나 권을 주무기로 하기 보다 검을 사용하는 무협지를 좋아했었고, 그런 무협지 속에서 상상하던 절세 검객이 영상으로 완벽하게 재현된 롤 모델이었습니다. 청수한 백삼 문사에 최고의 검술인 어검술을 시전할 수 있으므로 검은 손에 들지 말고 반드시 등에 메고 다녀야 했거든요. 더구나 쌍검이라서 금상첨화.
몇 년 전 서극 감독이 촉산3 를 제작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반지의 제왕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