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주문했다. 그러자 불과 이틀 후 검찰은 ‘유관기관 협력체계’ 구축, ‘전담수사팀’ 운용, ‘실시간 모니터링’ 등을 골자로 하는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정대응’ 방침을 발표한다.
이후 검찰의 방침이 사이버 사찰에 다름 아니라며 많은 이들이 반발하자 ‘실시간 모니터링은 없다’며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국산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떠나 외산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 소위 ‘망명’을 한 상태였고, 망명 시도는 오히려 더 가속화 되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 공간이 정부의 감시로부터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와 매우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가 또 있다. 태국이다. 태국의 형법 112조는 국왕에 대한 모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
국왕과 여왕, 왕세자 또는 왕실을 비방 모독하거나 위협하는 내국인과 외국인에게는 3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을 규정
영화관에서 국왕찬가가 울려 펴질 때 일어서지 않았다고 재판을 받고, 정부 관리에게 휴대전화로 왕비에 대한 불경한 문자 4건을 보낸 혐의로 한 노인은 무려 20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는다. 외국인도 예외가 없다. 국왕 생일에는 술을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난 한 스위스 남성은 거리에 있는 국왕 사진에 낙서를 했다가 무려 10년 형을 선고 받는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이 활발해지자 태국 정부는 2008년 국왕 모독죄의 적용 대상을 인터넷으로 확대한다. 법무부 산하에 24시간 인터넷 사이트 감시팀을 신설하고 ‘국왕모독죄’ 소지가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감시하고 차단하기 위해 예산 8000만 바트(약 33억 원)를 배정한다. 심지어 2011년엔 “페이스북에 왕실 비방 글 만여 개가 있다”며 왕실 비방 글을 삭제해 달라고 정보통신기술부 장관이 요청하는 웃지 못 할 상황까지 벌어진다.
태국 정부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인해 무려 400여 사이트가 국왕모독죄에 걸려 형사소추 당했다.(2008년 12월 현재) 이 때문에 태국은 언론자유 지표에서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두 단계 낮은 130위를 기록하고 만다. 이 정도면 민주주의 국가라고 볼 수 없는, 거의 봉건제에 가까운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 지표 역시 태국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1일 발표한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지난해보다 4계단 떨어진 68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2010년 이후 언론자유가 1그룹인 ‘자유’에서 2그룹인 ‘부분적 자유’로 떨어진 이래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경향신문, 2014.5.2)
최고 권력자나 정부에 대한 비판을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심리는 언론자유국인 미국에서도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걸프전 발발 당시 걸프전(을 주도한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미국의 지식인 하워드 진은 한 고등학교 강연에서 한 여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이 나라에 살고 계신가요?”
이 질문에는 같은 미국인으로서 조국(미국 정부)이 수행하는 전쟁을 비판하는 하워드진에 대한 분노와, 그럴 거면 차라리 다른 나라에 가서 살라는 조롱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하워드 진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내가 사랑하는 건 조국, 국민이지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다.
어떤 정부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정부는 비애국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정부에 반대할 것을 요구한다.
소녀가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했다면, 하워드 진은 국가와 정부를 분리하고 있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소녀가 정부에 대한 하워드 진의 비판을 미국에 대한 ‘모독’으로 느낀 이유가 바로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이 둘을 분리한 하워드 진은 오히려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린 정부야 말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을 ‘모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게 맞을까? 정부 혹은 정부의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 국가에 대한 ‘모독’일까? 아니면 정부와 정부의 최고 권력자가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 국가에 대한 ‘모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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