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프랑코 정권의 파시즘과 싸우려는 순수한 열정 하나로 에스파냐 내전에 참전했다. 공화 정부를 지원하는 여러 조직 중에서 마르크스 통일노동당에 가입한 그는 소련의 지휘를 받는 공산주의자들도 파시즘 척결의 동지로 여겼으나, 곧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권력의 유지에만 골몰한 스탈린 체제는 내전 초기 오웰이 감동했던 자치, 자율의 공동체를 억압하고 소멸시켰던 것이다. 그의 종군 기록인 <카탈루냐 찬가>에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환멸이 넘쳐난다.
소설 <1984>도 혁명의 열정은 전체주의 체제의 옹호자들에 의해 배신된다는 <카탈루냐 찬가>의 주제를 이어받는다. 그러나 이 암울한 미래 보고서가 드러내는 디스토피아의 섬뜩한 진단은 현 세계에도 예언서처럼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이제 이 책은 원래의 역사적 맥락을 훨씬 넘어서는 함의를 갖게 되었다. 개인의 동의가 없이 위치 추적기를 사용하겠다는 미국 정부에 대해 한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1984> 비슷한 것을 만들려고 하느냐”며 일갈했을 정도인 것이다.
이 소설의 무대인 가상의 초강대국 ‘오세아니아’에서는 최고 권력자 ‘빅 브라더’가 모든 이를 감시한다. 도처에 있는 텔레스크린이 개인의 내밀한 삶까지 들여다보는 형태다. 당이 벌이는 끝없는 전쟁의 목표는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지 않으면서 그들이 불평등을 용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빅 브라더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으면 과거의 기록까지 삭제한다. 그 부당함을 인식하는 자는 곧 체제 전복의 위험인물이기에 그를 색출하기 위해서는 사상의 통제가 필수적으로 따른다.
<1984>는 오웰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48년의 뒷자리를 뒤집은 것이다. 국가에 의한 전면적 통제를 예언한 그의 메시지가 정확하게 30년 뒤 이곳에서 속속들이 재현된다. 그가 참상을 제시한 목적은 그것을 막기 위함이었을 텐데, 이 정부에 의해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는 소회가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