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은 선배 아들이 서울에서 결혼 한다고 해서 부조금만 전해 드렸습니다.
사실 저도 10월 3일이 결혼 기념일이었습니다.
그것도 20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1994년 10월 3일 전주 결혼식..
저는 대구에 살면서 대리점 유통일을 하였고, 집사람은 전주에서 교사였습니다.
처음엔 반대도 조금 있었습니다.
공무원도 아니고.. 직장이 안정적일지 알수도 없고요.
그리고 집안 어른들의 반대는.. 영호남의 만남 이었습니다..
조금은 촌스럽게 집사람과는 선배를 통해서 선을 봤습니다.
그날의 생생한 기록들이 문서로 남겨져 있습니다.
저희는 휴대폰이 아닌 012, 015 삐삐 세대라...
시외전화 요금이 요즘 휴대폰 요금만큼 나왔습니다.
제가 좀... 몸이 많이 달았는가 봅니다.. ㅎ
큰 처남이 같은해에 먼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처갓집 어른의 말씀과
약혼식을 하라는.. 주변분들의 말씀에.. 그렇게 해야 되는줄 알고..
약혼식을 먼저 했습니다.
여성을 만난것이 처음이라..
약혼식 올리고 기념 촬영을 전주 덕진공원에서 하는데도.. 좀 쑥스럽습니다.. ㅎ
이어서 올린 결혼식..
신혼여행..
집사람이 제게 처음으로 만들어준 아침 밥상..
마냥 행복할줄만 알았던 결혼 생활이었는데요.
혼자 계신 저희 아버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위로 세명의 형들이 있는데..
서로 안모신다는 핑계에..
뇌출혈 수술비까지 제 카드로 계산하고 신혼집으로 모셔 왔습니다.
3 년가까이 어른을 모셨고요.
아버지 병간호 때문에 쫓겨났던.. 직장이었지만..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96년에 가계를 열었습니다.
세세한 이야기를 다 할수는 없지만..
걱정과는 달리 배운것이 유통일이라.. 생각지도 않게..
그당시 97년과 98년 유통에서 2년 연속 판매 1등을 했었습니다.
2 년 장사해서 새아파트를 구입할 만큼의 돈을 벌었지만..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여전히 자동차는 1톤 더블캡 트럭이었고, 포항 죽도시장에서 회를 사서 차에서 먹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후.. 조금 늦게 아이를 가졌습니다.
지금 저희집 아들 입니다..
20년동안 제가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최근에 함께 여행을 간것 외에는 따로 선물도 못해줬습니다.
앞으로 더 잘 하도록 다짐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