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로버트 포겔)
1974년 미국에서 흥미로운 경제사 책이 나왔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스위크>를 비롯한 저명 언론 매체에서 서평을 실으며 주목했으니 경제사로는 이례적으로 큰 관심을 받은 책이었다. <십자가 위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그 책의 주제는 미국 남부 흑인 노예제의 역사다. 제목만으로도 노예제가 고난과 시련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주제의 책이 처음도 아니었는데 왜 유독 이 책에 관심이 집중되었을까? 흑인 노예제의 역사는 역사가의 출신 배경에 의해 서술 내용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남부 출신의 역사가들은 노예제가 그다지 가혹한 제도가 아니었음을 강조하는 반면, 북부 출신의 역사가들은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면서 그 몰인격적인 착취의 현장을 고발한다. 다른 한편으로 백인은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흑인 역사가도 있다.
이렇듯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 책의 공저자인 로버트 포겔과 스탠리 엥거먼은 계량적 수치를 이용해 가치중립적인 숫자가 말하게 하자는 계량의 방법을 도입했다. ‘미국 흑인 노예제의 경제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다. 이들은 흑인 노예가 일주일에 받았던 채찍질의 횟수라든가 그들이 하루에 섭취한 식량의 총 칼로리를 수치화해 통계자료를 만들었다. 그렇게 도달한 결론은 통념과 달리 노예제가 수익성 높은 효율적 경제 제도이며, 흑인 노예가 섭취한 칼로리가 북부 백인 노동자보다 떨어지지 않았기에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는 논리였다.
기본적으로 노예가 매매되는 물건이었다거나 그들에 대한 채찍질이나 감금 자체가 갖는 도덕적 부당성을 염두에서 제외시킨 결과였다. 노예제의 역사에 부담을 느끼는 미국인들의 가책을 덜게 하는 데 일조한 주장이었으나,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오늘날 이 책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과감하나 신빙성 없는”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숫자에만 의존하는 역사가 갖는 숙명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