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편중의 폐해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콜린 맥컬로우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소설 <가시나무새>의 저자로서만 알려져 있다. 그가 17년에 걸쳐 집필한 7부 연작 로마사 시리즈는 국내에서 <로마의 일인자>를 시작으로 신속히 번역되었으나 2부에서 출간이 중단되었다. 방대한 사료 수집을 바탕으로 한 연구의 깊이에 치밀한 문학적 구성력이 더해진 이 대하소설에 전문가들은 경탄했으나 우리 독자층은 외면한 것이다.
그 사정의 이면에 <로마인 이야기>의 성공이 있다. 유명세를 탄 저자에의 편중이 심한 독서 대중 공략에 나선 대형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시오노 나나미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동안 맥컬로우의 소설은 방치되다가 잊혀졌다. <로마인 이야기>에는 성공지상주의, 제국주의, 엘리트주의, 반지성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요인들의 사례가 무수하다. 로마사의 장점을 개방성과 다원주의라고 말하면서 그 원조인 그리스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싶을 정도로 폄하한다든가, 로마사에서도 민중의 투쟁과 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한 기술이 잘못되어 있는 것들도 단순한 실수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를 통해 군사 대국, 경제 대국의 길을 추구해온 일본의 선택을 옹호하고 정당화하고 싶었던 것 같다. 로마 제국이라는 전제정의 출발이 국민의 자유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은 이 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이 책이 우리나라 정, 재계 관리 층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인기 가도를 달린 것도 통치자 중심의 시각 때문이었는데, 이를 두고 역사학계에서 일찌감치 표명한 우려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근자에 조선인 종군위안부에 대한 나나미의 망언이 이슈화되면서 그에 대한 분노도 뒤늦게나마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독서 대중도 책임을 갖고 각성해야 한다. 일본의 극우파나 한국의 뉴라이트 같은 독버섯은 그릇된 역사관을 꿰뚫어볼 능력이 없는 사회에서 돋아나 자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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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남 지역으로 답사를 떠나는 관계로 칼럼을 미리 올립니다. 한겨레 인터넷 판에는 저녁 8시 무렵에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