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로마노프가의 황태자 알렉세이는 혈우병으로 추정되는 병을 앓고 있었다. 유럽의 왕가에 널리 퍼져 있던 병이었다. 의사들이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포기하자 황후 알렉산드라는 아들을 구할 묘책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때 수도승 라스푸틴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자신하며 기도를 통해 황태자를 살렸다. 라스푸틴은 황후와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총애를 받으며 권좌에 올랐다. 라스푸틴이 황후의 정부라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황제는 노일전쟁과 혹정에 시달리는 농민에게 총격을 가한 ‘피의 일요일’ 사건 등 난국을 맞아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니콜라이는 전선으로 떠나며 황궁을 아내에게 맡겼다. 이후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져 그가 제정 러시아를 섭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라스푸틴의 전횡이 극에 달하자 좌우를 막론하고 그에 대한 반감이 증폭했다. 결국 그는 왕가의 인물이 주도한 만찬에 초대받았다가 암살되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다. 2년 뒤 황제 가족은 볼셰비키 손에 처형되었고 로마노프 왕가는 몰락했다.
라스푸틴의 평전을 쓴 콜린 윌슨은 그의 특이한 사항을 이렇게 기록했다. “현대사의 어떤 인물도 그리고리 라스푸틴만큼 선정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자료로 가득 차 있지 않다. 그에 대한 책이 백권도 더 있지만, 어떤 한 책도 그라는 인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대부분이 날조이거나 의도적인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실 윌슨의 이 표현은 역설적으로 진실의 편린을 말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허황된 신비에 대한 비이성적 믿음을 키움으로써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킨 것이었으니 말이다.
최근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요설이 난무한다. 국가의 기조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정상적으로 정치 권한을 수행하고 권위를 행사해야 할 자리에 가당치 않은 인물이 개입하면 그때엔 왕조의 운명조차 바람 앞의 등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