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ea declares war on Germany
독일 상품 불매 운동
권력에 오른 히틀러와 나치당은 공산 혁명을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로 반유대주의를 선동하며 유대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공산주의자의 대다수는 유대인이었으며, 그들의 공산 혁명 시도는 실패로 끝났었습니다. 1933년 유대인들은 암스테르담의 세계 유대인 회의를 통해서 독일에게 요구합니다. "히틀러! 공산주의자든 혹은 과거가 어떻든 모든 유대인들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 놓아라. 그런 식으로 우리를 대할 수는 없다. 세계의 모든 유대인들은 요구한다. 이것은 최후 통첩이다."
독일은 당연 유대인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미국 대표단 수장이자 총회 대표인 유대인 사무엘 운터마이어는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배에서 내린 그는 곧장 WABC 라디오 방송으로 달려가 "독일에 대한 성전"을 선포합니다. "세계의 유대인들은 독일에 성전을 선포한다. 우리는 이제 독일과 신성한 전쟁에 들어간다. 우리는 그들을 굶겨서 항복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수출 경제이다. 그들에 대해 전세계적 불매 운동을 벌인다면 그들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독일은 식량의 2/3를 수입하고 있었는데, 만약 수출을 못한다면 굶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시 1933년 뉴욕 타임스에 게재된 운터마이어의 선언문은 "이 경제적 불매 운동은 우리의 자구책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전쟁을 만들기 위한 전세계 유대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응하지 않는 독일을 자극하기 위하여 1933년 시오니즘 좌장격인 미국인 랍비 Wise가 선언한 "독일에 대한 성전 선포"와 "독일 상품 불매 운동"은 독일 국민들로 하여금 완전히 유대인에게 등돌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과 독일 국민들은 런던과 뉴욕이 나치 정부를 비밀히 옹립한 것과 나치와 프리메이슨들이 고의로 반유대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전 선포
"유대는 독일과 전쟁을 선포한다!" (Daily Express, 1933. 3. 23)
"유대는 독일과 전쟁을 선포한다! 세상의 모든 유대인들은 단결하라. 독일 제품을 보이콧하라. 모두 독일에 맞서 시위를 벌여라! "세상의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독일에 대한 경제 전쟁을 선포한다. 천 4백만 유대인들은 독일과 싸우기 위해서 하나로 뭉쳤다. 히틀러의 국민들과의 성전에 참여하기 위해서 유대인 도매업자들은 그들의 점포를, 은행가들은 주식을, 상인들은 장사를, 가난한 이들은 오두막집을 버렸다." (Daily Express, 1933. 3. 24)
"유대인이건 이민족이던 이 신성한 전쟁에 소집되지 않은 사람은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 독일 제품을 사지 않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독일 상품을 판매하거나 보호하는 상인이나 점주들에게 반대해야 한다. 누구라도 독일 상선이나 선박을 보호하는 사람에게는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히틀러 정권을 약화시킬 것이며, 그들이 가장 의존하고 있는 수출을 파괴함으로써 독일인들이 정신차리게 할 것이다." (사무엘 운터마이어, 1933. 8. 6, WABC 라디오 방송 & 뉴욕 타임스 1933. 8. 7)
"독일은 유대교의 적이다. 독일은 반드시 증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유대교의 목적은, 모든 독일인에 대한 무자비한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며, 독일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독일의 모든 무역 봉쇄, 원자재 수입 차단, 모든 독일인과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보복을 요구한다." (A. Kulischer 1937. 10월)
"독일과 일본의 패배, 세계 무역에서 그들의 제거는, 규모와 이윤 모든 면에서, 영국의 해외 무역을 확장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버나드 바룩 1960)
"독일에 대한 이 전쟁 선포는 이제 성전으로 규정되어졌다. 이 전쟁은 독일의 완전한 파괴를 위해 수행되어야 한다." (Franz J. Scheidl)
"1934년 유럽에서의 전쟁은 필수적이다." (H. 모겐쏘, 1933)
"몇 달 동안 세계 모든 유대 공동체, 모임, 기업, 각 개별적 유대인들에 의해서 독일에 대한 투쟁이 주어졌다. 우리의 역할이 일반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영토와 식민지를 되찾고 강대국이 되려는 독일의 야심에 대해 온 세상의 영적, 물질적 전쟁을 촉발할 것이다. 우리 유대인의 이해관계는 독일의 완전한 파괴를 필요로 한다.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독일은 유대인에게 위협이다." (유대인 테러 그룹 Irgun Zvai Leumi 설립자 블라디미르 자보틴스키, 1934)
"히틀러는 전쟁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아니다. 하지만 조만간이다." (Emil Ludwig Cohn, 1934)
"우리 유대인들은 독일에 전쟁을 불러올 것이다." (David A. Brown. 1934, "유대인의 생존 전쟁" 중에서)
"우리는 독일, 독일 병사, 독일 선원, 독일 승무원에 대한 깊은 증오를 불러올 것이다. 우리는 승리할 때까지 증오해야 한다." (Lord Beaverbrook)
"세상에 진짜 권력은 단 하나밖에 없다.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 말이다. 지구 상에서 우리 유대인들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힘을 가지고 있고, 사용할 줄 안다." (블라디미르 자보틴스키, 1935. 7. 27)
"영국, 러시아, 프랑스, 미국의 경제 블록은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제 시스템을 무릎꿇게 만들 것이다." (폴 드레퓌스, 1938. 5. 15)
"1938년 6월 3일 미국의 히브리인들은 유대인들이 영국, 러시아, 프랑스의 핵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세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나치 독재자를 지옥으로 보낼 것이라고 자랑했다. (Joseph Trimble, 1938)
"독일은 우리의 공공의 적 1호이다. 어떠한 자비도 없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전쟁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국제 반인종, 반유대주의 리그 Bernard Lecache, 1938. 11. 9)
"이 전쟁은 온전히 유대인들의 지배력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미군 장군 반 혼 모슬리, 1939)
"지난 달 특히 지난 주에 나와 동료들이 했던 선전 포고들은 유대인들은 영국과 함께 설 것이고, 민주주의의 편에서 싸울 것이라는 뜻이라고 분명히 확인한다. 우리의 시급한 소망은 이 포고들이 효과를 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의 계획과 완전히 일치하는 방법으로 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큰 문제이던 작은 문제이던 폐하의 지시에 협조하는 위치를 취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인력, 기술력, 자원, 자금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임 바이즈만, 1939. 9. 8)
"미국, 영국, 프랑스, 북아프리카, 서아프리카,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은 독일의 완전한 소멸을 위한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하였다." (네덜란드 Central Blad Voor Israeliten, 1939. 9. 13)
"평화 협상은 그만 둬라! 독일은 산산히 부숴져야 한다!" (Daily Herald, 1939. 12. 9)
"우리 유대인들은 이 전쟁을 성전으로 간주한다." (The Daily Herald, 1939)
"우리 유대인들이 당신의 참호 속에서 같이 싸우지 않더라도,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한다. 이 전쟁은 우리 것이고, 당신은 우리와 함께 싸운다." (Schalom Asch, 1940. 2. 10)
"세상의 모든 유대인들은 단결하라. 독일에 대한 전쟁은 유대의 모든 공동체, 모든 회의, 모든 의회, 모든 유대인 각 개인들에 의해서 주어질 것이다. 거기에서 독일에 대한 전쟁은 북돋워질 것이고, 독일을 완전 파괴해야 한다는 우리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다." (유대인 신문 Natscha Retsch)
"1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함으로써, 유대인들은 영토 하나를 잃었다. 우리는 다시 정복해야 한다." (Louis Marschalko, "The World Conquerors : The Real War Criminals")
"세계 유대인 의회는 지난 7년 동안 독일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세계 유대인 의회 영국 지부장 랍비 M. Perlzweig, 1940)
"2차 대전은 유대교의 근본을 지키기 위해서 벌어졌다." (랍비 펠릭스 멘델스존, 1942)
"이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었고 유대인의 해방을 위해 벌어졌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모두를 합쳐도 우리 유대인보다 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전쟁 전체 모든 산업에 돈을 댔을 뿐만 아니라, 이 전쟁을 계속하게 하는 선전 선동을 완벽하게 해냈다. 승리의 보증은 적들을 약화시키고, 적국의 영역 안에서 그들의 저항 안에서 그들을 파괴하는데 있다. 우리는 적들의 요새 안에서 적들을 파괴하는 트로이 목마이다. 유럽의 모든 유대인들이 적을 파괴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이다. 유럽에서 우리의 앞잡이들이 승리를 돕는 가장 가치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임 바이즈만, 1942, 세계 유대인 의회 회장 & 이스라엘 대통령)
"1939년 나나 또는 독일인 누구던지 전쟁을 원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전쟁은 유대 혈통을 가졌거나 유대인의 이해 관계를 위해 일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1차 대전에서 혼난 이후로 영국이나 미국과 두번째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아돌프 히틀러, 1945)
"전방에 기독교 병사 전장터로 달려가고, 우리는 하던대로 군복을 만든다." (유대 찬가)
"우리는 러시아의 사유 재산을 모두 없앴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똑같이 할 것이다." (1925. 10, Zinobit)
"앞으로 겪을 세계 혁명은 오로지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하며, 우리 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혁명은 전 세계에 대한 유대인의 지배를 강화할 것이다." (Le Peuple Juif, 1919. 2. 8)
"이스라엘이 1차 대전을 승리했다. 우리는 해냈다. 우리는 이득을 얻었고,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우리의 숭고한 보복이었다." (멘스도르프 백작, 1928)
"그들은 범죄와 도둑질을 축복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나폴레옹)
"유엔은 단지 붉은 세계의 거대한 강제 수용소로 이끄는 덫일 뿐이다. 유엔은 우리가 이끌고 있다." (Harold Wallace Rosenthal)
"프리메이슨이란 유대교에서 나온 것이다. 메이슨의 종교 의식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Jewish Tribune of New York", October 28, 1927)
"프리메이슨은 유대인 조직이다. 그 역사와 조직원 등급, 직책 임명, 비밀 언어, 해석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유대인것이다." (랍비 Isaac Wise, 1927)
"지난 세기 역사는 모두 프리메이슨 각 지부의 마스터들인 300명의 유대인 자본가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Jean Izoulet, 1931)
Jedea declares war against Germany
독일과 유대인의 인종 전쟁
세계의 유대인들은 독일 상품 불매 운동을 벌였고, 이것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그 어떤 상점에서도 Made in Germany가 적힌 단 하나의 상품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도자기 회사 Woolworth 는 도소매점들이 받지 않는 도자기와 그릇들을 모두 강에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독일인들은 뉴 월드 오더 시오니즘의 음모에 휘말려서 1차 대전에 끌려들어갔고, 매우 유리한 상황에서 자비롭게도 평화 조약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루지타니아 침몰"이라는 가짜 깃발 테러 공격에 의해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유리했던 전쟁을 억울하게 패전했습니다. 게다가 부당한 천문학적 전쟁 배상금은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유대 자본에 의해 경제 부문과 언론 부문이 지배당하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끈질기게 참아냈고, 유대인들에게 그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테러나 살인 사건은 없었습니다. 독일의 반유대주의 사건들은 오로지 나치당과 버네이 브리쓰에 의해 계획적으로 선동되었습니다.
전세계적 독일 상품 불매 운동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독일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독일인들은 산업을 정지시키고, 실직하게 만들고, 굶주리게 하는 유대인들의 불매 운동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수상이나 장관들의 정체성에도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상점에 스와스티카(swastika, 卍)를 표시하는 등 반유대주의가 격화되었으나, 전쟁을 생각하는 독일인들은 없었습니다.
Benjamin Freedman Speaks on Zionism (한글 자막)
팔레스타인으로 가라
수정의 밤 Kristallnacht
1938년 11월 9일, 파리에 살던 독일 태생의 폴란드 출신 유대 청년 헤르쉘 그린스펀이 파리의 독일 대사관에 들어가 독일인 외교관 에른스트 폼 라쓰를 총격하여 사망케 한다. 이 사건은 결정적으로 독일 여론을 악화시켰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내에서 유대인 상점의 유리가 깨지고 길거리에서 싸우는 등의 험악한 일들이 벌어져 1-2천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는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하트 Crystal Night, Night of Broken Glass)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빌미로 1만 명의 유대인들이 베를린, 함부르크, 메클렌부르크, 포메라니아에서 붙잡혀 곧바로 선박편으로 작센하우젠으로 보내졌다. 이 수용 인원은 제2차 세계 대전 무렵 2만~3만 5천명으로 늘었다. 작센하우젠으로 보내진 총 20만명 수용자 가운데 10만명이 병고, 강제 노동, 처형 등으로 사망했다.
"수정의 밤" 배후에는 유대인 메이슨 조직 버네이 브리쓰(B'nai B'rith)와 LICA (Ligue International contre l'Antisemitisme)가 있었고, 독일인을 도발하여 전쟁을 하려는 의지를 만듬과 동시에, 사막에 가지 않으려 하는 유대인들을 공포로 몰아 "유럽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니 팔레스타인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독일에 달라붙은 나치
하바라 협정(이주 협정)
1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팔레스타인은 오토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고, 1922년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다. "1933년 3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의장이 되었고, 같은 달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32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나치의 반유대주의 선동에 위협을 느낀 유럽의 유대인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이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갑자기 미국의 국경을 닫고 더 이상 유대인들의 미국 이민을 허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루스벨트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선택된 대통령, "The chosen one" 이다.
시오니스트와 나치의 협력
독일의 시온주의 연맹, 시온주의자 유대인의 지휘를 받고 있는 앵글로-팔레스타인 은행과 나치 독일 경제부처(얄마 샤크트)간 3개월에 걸친 협상 후, 1933년 8월 25일 하바라 협정(이주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독일의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보내기 위해 계획되었으며, 그들의 자산을 독일 수출 상품과 교환토록 강제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출발 전 그들의 모든 자산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 자산들은 독일 수출 상품들로 변환되어 팔레스타인에서 받을 수 있었다.
1933년 5월 시온주의자들의 감귤 농장 회사 하노테아(Hanotea)는 독일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송금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하노테아는 독일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려 하는 시온주의의 노력을 도왔다. 독일 정부와의 협상에서 하노테아는 이주 예정자들로부터 (자산을 처분한) 돈을 받고, 이 돈으로 독일 상품을 구매하는 협상을 이끌어냈다.
이 상품들은 이주자들과 함께 실려 팔레스타인으로 보내졌다. 팔레스타인에 있는 수입상들은 이주자들로부터 이 독일 상품들을 구매하고, 이주자들은 그들의 투자를 현금화했다. 성공적으로 운영된 이 협정은 후일 하바라 협정의 기반이 되었다. 이 하노테아의 중심적 인물은 폴란드 시온주의자 유대인 샘 코헨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권력에 오른 바로 그 달 "1933년 3월" 시작된 나치와의 직접 협상에서 시온주의의 이익을 대변했다.
하바라 회사는 하노테아와 비슷한 조건에서 운영되었다. 이주자들은 최소 1000 파운드를 은행에 입금해야 했고, 회사는 독일 제품을 구매하여 팔레스타인으로 보냈다. 전세계적인 독일 상품 불매운동으로 수출의 길이 막혔던 독일에게는, 이 방법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독일의 배를 가르고 탄생하는 이스라엘
The Transfer Agreement Of 1933 Between The Zionist Party And The Nazis
Zionists sign deal with Hitler - The Transfer Agreement 1933
10 Facts - Jewish immigration to Palestine/Israel? (1800-1947)
10 Facts - Jewish immigration to Palestine/Israel? (1947-2014)
I.G Farben
나치를 무장시킨 유대 자본
I.G Farben은 히틀러의 군수 공장으로써, 대부분의 독일군 무기를 제조했던 회사이며, 2차 대전의 중심에 서있는 거대 기업입니다. I.G Farben이 없었다면 2차 대전은 불가능했습니다. 히틀러의 재무장관 얄마 샤크트는 탄약과 화학 약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계약을 I.G Farben 에게 주었습니다.
I.G Farben은 소총, 탄약, 탱크, 전투기, 폭격기, 군함, 잠수함 등과 Wunderwaffe 까지 제조 공급했던 나치에게 가장 중요한 기업입니다. Wunderwaffe (Wonder Weapons, 경이로운 무기)는 타이거 전차, U-Boat, 비스마르크 전함, 열차 대포, V2 로켓, 반중력 비행 접시, 핵 폭탄 등입니다. I.G Farben은 홀로코스트에 사용된 것으로 홍보되고 있는 신경 가스 Zyklon-B의 95%를 생산했습니다.
유대인 기업
I.G Farben은 로스차일드, 워버그, 록펠러 소유의 유대인 기업으로써, Edsel B. Ford의 포드 자동차, Carl Bosch, Charles E. Mitchell, Walter Teagle의 뉴욕 연방 준비 은행 & New Jersey Standard Oil, H.A. Metz의 맨해튼 은행 등 전세계 유대인들의 집중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 회사나 마찬가지였던 I.G Farben (현재 AGFA, BASF, Beyer and Sanofi)과 존 D. 록펠러의 New Jersey Standard Oil (현재 엑슨 모빌)은 결국 수많은 카르텔들을 병합하여 하나가 되었으며, 1937년까지 록펠러의 동료였던 프랑키스트 폴 워버그(로스차일드 심복, 초대 연방 준비 은행 총재)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2차 대전이 시작된 후에도 미국이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I.G Farben 과 Standard Oil 의 병합은 유지되었습니다.
연합군의 베를린 폭격 당시 I.G Farben 본사와 공장들은 폭격하지 않았으며, 종전후 CIA 사무실로 사용되었습니다. 독일 정보부 BND는 CIA 산하 기관이 되었습니다.
학자 Anthony Sutton과 랍비 마빈 안텔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파괴된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에도 불구하고 I.G Farben은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유럽 연합은 나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I.G Farben 회의실에서 수립되었던 "제3제국 계획"은 현재의 유럽 연합으로 수정되었습니다. 나치를 운영하던 사람들이 바로 유럽 연합의 소유주들입니다. 이들은 유로크라트 Eurocrat 로 불리우는 유럽 왕족/귀족들 즉 영주들입니다. 서구 민주주의로 홍보되지만, 유럽 연합의 실체는 사탄 시스템입니다. 유럽 연합은 선출되지도 않고 대중에게 드러나지도 않은 영주 2세들이 선출되어온 각국 대표들을 통치하기 위한 봉건제 지배 시스템입니다.
동정심 창조
I.G Farben은 아우슈비츠 등 강제 수용소를 운영하던 기업이며, 유대 자본의 기업을 나치가 경비를 서 준 것입니다. 강제 수용소의 목적은 독일군 무기를 제조하는 노예 노동을 제공하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가려 하지 않는 유럽의 유대인들을 겁주어 팔레스타인에 가게 하거나, (99%의 유대인들이 가지 않으려 했다), 이주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홀로코스트 제물로 사용하여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을 창조하고 이스라엘의 건국 명분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피의 값"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전세계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홀로코스트, 안네의 일기 등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수용자들에 대한 생체 실험도 이들 수용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수용소를 운영하던 시온주의자들이 동포 유대인들에게 행사한 무자비하고 잔인한 폭력은 나치보다 더 심했습니다. 홀로코스트에 큰 책임이 있는 기업은 보스, IBM, 포드 자동차, 시멘스, J.P 모건의 체이스 맨해튼 뉴욕 은행, 코닥, 환타.
팔레스타인으로 몰기 위해서
유스타스 멀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럽에서 반유대 감정이 가장 없던 독일이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은 시오니즘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강제 수용소는 시오니스트들에 의하여 운영되었으며, 팔레스타인에 가지 않으려 하는 오소독스 유대인들에게 시오니즘을 주입하여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으로 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결국 희생되었다. 희생자들에게서 강탈한 재화들은 스위스 은행으로 가져가 나치가 관리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을 미국 국민들이 몰랐던 것처럼, 독일 국민들은 강제 수용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히틀러가 전쟁을 하려 하지 않자, 영국과 프랑스가 베를린을 먼저 폭격하여 2차 대전이 시작되었다".
How the Rothschilds created Israel - Eustace Mullins
Only 1 Political Party Today The Nazis
Jim Condit Jr. - The Final Solution to Adolf Hitler
목표는 유대인 멸종
퓰리쳐상 2회 수상자 Louis Kilzer : "Werther"로 알려진 소련 공산당과 나치간의 스파이 연락망에는 마틴 보어만 만이 접근 가능했으며, 독일군의 정보와 작전은 고스란히 모스크바에 알려졌다.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에서 소련의 승리는 마틴 보어만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보어만이 붉은 군대 50개 사단보다 낫다. 보어만은 스탈린그라드 패배를 유대인 절멸 이유로 사용했으며, 그것은 일루미나티의 목표였다."
"IBM은 "1933년 3월" 히틀러가 권력에 오른 바로 그 달, 독일에 왔다. IBM은 그들의 펀치카드 시스템을 사용하여 최종 소집을 위한 유대인 명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뉴욕에 본사를 가지고 있는 이 회사의 Thomas Watson 회장이 히틀러 정부로부터 다수의 공로장을 받았지만, 뉴욕 타임스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2차 대전 은폐의 가장 큰 공로자 중의 하나이다. 서방의 거대 언론들이야말로 가장 큰 음모론자(Conspiracist)들이다." (Jim Condit Jr.)
오소독스: 뉴 월드 오더의 장애물
헨리 매코우의 유대인 부모는 나치 점령하의 폴란드에서 역경을 겪었고, 그의 조부모들은 연기속에 사라졌다. 그는 오소독스 유대교에 대항하는 사탄적 이단을 이끌었던 제이콥 프랑크(1726-1791)와 로스차일드, 시온주의자 엘리트들이 가진 관계를 강조한다.
제이콥 프랑크는 "서구 문명의 멸망"과 "악마(evil)의 승리"를 원했다. 헨리 매코우는 "그들에게는 근친 상간과 소아애를 포함하여 어떤 것이든 허용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들은 현재 엘리트 혈통내에서 생활의 일부이다. 프랑크는 "메시아"임을 자처했고, 또 다른 사탄주의자 "사바타이 츠비의 화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추종자들은 "사바테안 프랑키스트" 또는 단순히 "프랑키스트"로 알려지게 되며, 여기에는 제이콥 프랑크의 제휴자 마이어 암쉘 로스차일드가 구축한 로스차일드 왕조의 엘리트들이 포함된다. 1776년, "바바리안 일루미나티"를 설립한 건 로스차일드, 제이콥 프랑크, 그리고 그들의 앞잡이 예수회 사제 아담 바이샤우프트였다. 헨리 매코우는 이렇게 썼다.
"유대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분열이 있었다. 이단이 주류를 소멸시키고, 시온주의를 통해서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일루미나티 유대인들이 만든 반유대주의 때문에, 유대인들은 엉뚱하게도 그들의 지도에 매달린다."
저명한 캐나다 랍비 군터 플라우트는 1988년 "메시아가 될 사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은 독일에서 유대인들에게 발생한 일에는 프랑키스트들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플라우트는 제이콥 프랑크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펼쳤고, 소설의 형태로 그의 발견을 적어냈다. 제이콥 프랑크는 유대인들을 "뉴 오더"의 장애물로 보았다. 플라우트는 제이콥 프랑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유대인이다. 누구든지 유대인과 논쟁하다 보면 그들의 기존 가치들을 뒤엎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기존의 가치들을 믿고, 더 끔찍하게도 그것들을 따라 수양하는 사람들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의 앞길에 유대인들이 방해가 된다는 걸 확신한다면, 그는 모두를 없애는 길을 찾을 것이다. 파괴하고 해충처럼 박멸시키는 길을 말이다. 유대인들은 전통의 도덕을 믿기 때문에, 따라서 현상황을 영구화할 것이기 때문에 모두 없애야 한다."
나는 다른 책에서 주요 나치들이 유대인이거나 유대 혈통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개괄한 적이 있다. 유대인들을 그들의 세계 지배 계획을 진척시키기 위해 활용되어야 할 소모품으로 보고 있는 로스차일드와 같은 사바테안 프랑키스트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것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참조 : David Icke, Adolf Hitler Was A Frankist Jew - Rabbi Antelman (5분 30초), 인류여! 무릎을 꿇어라! (Human Race get off your knees), 100 페이지
반유대주의
"열등한 민족들을 다스리기에는 반유대주의가 필수적이다… 이것은 우리들 사이에서 반복되어 온 주제이다.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테러는 우리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종파, 왕조, 정치인,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분야에 기존의 질서들을 뒤집기 위한 우리 인물들을 배치해 놓고 있다… 모든 국가가 고문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세계 정부를 인정할 때까지 평화를 주지 않을 것이다." - 시온의 장로들의 의정서 9, Protocol
"반유대주의의 재앙을 겪은 모든 나라들은 우리의 주권 획득을 도울 것이다. 우리의 운동을 전파하는데 그리 큰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는 없다. 반유대주의는 적절한 원동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주에 대한 호감이 없던 곳에서는 새로이 생길 것이며, 있던 곳에서는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의 정부들은, 스스로 원해서든 혹은 반유대주의의 압박에 의해서든, 이 계획에 특정한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여기 저기에서 이 계획을 받아들일 것이며, 유대 사회에 대한 동정심이 생길 것이다." - Theodor Herzl, 1895
"유대인의 고난이 더욱 커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우리의 계획 실현을 도울 것이다. 나는 매우 뛰어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반유대주의를 유대인의 부를 늘리는 데 이용할 것이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와 탄압을 강화함으로써 우리를 도울 것이다. 반유대주의는 최고의 친구이다." - Theodor Herzl
Before Hitler came
제3제국 수립에 지배적인 역할을 한 것은 유대인들이다. 나치 고위직 상당수가 유대 혈통을 가지고 있고, 유럽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으로 몰기 위한 테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였다. 시온주의자들은 2차 대전 중 나치와의 협력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차단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하였다.
1938년 11월 9일, 파리에 살던 독일 태생의 폴란드 출신 유대 청년 헤르쉘 그린스펀이 파리의 독일 대사관에 들어가 독일인 외교관 에른스트 폼 라쓰를 총격하여 사망케 한다. 이 사건은 결정적으로 독일 여론을 악화시켰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독일내에서 유대인 상점의 유리가 깨지고 길거리에서 싸우는 등의 험악한 일들이 벌어져 유대인 1-2천명인이 목숨을 잃는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하트, Crystal Night, Night of Broken Glass)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빌미로 1만 명의 유대인들이 베를린, 함부르크, 메클렌부르크, 포메라니아에서 붙잡혀 곧바로 선박편으로 작센하우젠으로 보내졌다. 이 수용 인원은 제2차 세계 대전 무렵 2만~3만 5천명으로 늘었다. 작센하우젠으로 보내진 총 20만명 수용자 가운데 10만명이 병고, 강제 노동, 처형 등으로 사망했다.
"수정의 밤" 사건을 일으킨 것은 시오니스트 유대인 메이슨 조직 버네이 브리쓰(B’nai B’rith, 일루미나티 조직 Anti Defemation League ADL의 전신)와 파리의 시오니즘 단체 국제 반유대 기구 LICA (Ligue International contre l’Antisemitisme)이다. 버네이 브리쓰와 LICA의 도발 목적은 독일인을 도발하여 전쟁을 하려는 의지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사막에 가지 않으려 하는 유대인들을 공포로 몰아 "유럽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니 팔레스타인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버네이 브리쓰는 친위대와 돌격대, 나치당 등 나치 운동의 핵심부에 깊숙히 침투하고 있었다. 나치는 모든 유대인 조직을 폐쇄하였으나, 버네이 브리쓰만은 허용하고 있었다. 독일의 버네이 브리쓰는 80개 지부와 만 2천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었고, 베를린에도 3개의 지부가 있었다. 1933년 나치 정권이 수립된 이후, 유일하게 히틀러가 허용한 유대인 단체가 버네이 브리쓰다. 이 단체의 주요 활동 목적은 홀로코스트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시온주의자와 히틀러의 협력은 매우 깊었고, 은행가 오펜하이머와 항공기 제작업자 에른스트 하인리히 하인켈 같은 유대인들은 스스로 "아리안 인종"임을 천명하기도 했다. 다수의 유대인들이 아리안 인증서를 받았다. 나치 지도부에도 아리안 인증서를 보유한 유대인이 상당했다. 친위대 하인리히 히믈러, 빌헬름 카나리스, 알프레드 로젠버그, 죠세프 괴벨스 같은 이들이다.
부총통 루돌프 헤스는 이집트에 살던 유대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루돌프 헤스는 시온주의 창시자 모세스 헤스의 조카이다). 나치가 유대인으로 판명한 수많은 병사들이 독일군에 복무하였고, 히틀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중에는 독일군 최고 훈장인 "기사 철십자장"을 받은 병사도 상당수 있었다.
2차 대전에서 싸운 독일군 중에 유대인들이 가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인 소련군에도 무려 43만명 유대인들로 가득했다. 붉은 군대에는 Solomon Raikin, Isaak Revzis, Simon Reizin, Josef Rubin, Mikhail Belkin, Zelik Yoffe, Grigori Preizman 같은 유대인들이 있었다.
반유대주의의 가장 큰 비밀은 그것이 유대인 스스로가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유대주의는 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의 선동이다. 오스트리아 작가 루돌프 코모스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만약 반유대주의 유대인이나 유대 혈통을 가진 인물들이 이끄는 정당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매우 주의깊게 관찰해야 한다!"
디트리히 본더 (독일 유대인), Bulletin Item: Explosive Dossier on Hitler
2차 대전의 비밀
애버렐 하리만(W. Averell Harriman, Skull & Bones & 일루미나티 필그림 소사이어티)은 브라운 브러더스 하리만 은행의 자회사 뉴욕 유니언 뱅킹을 설립하고 프레스콧 부쉬에게 관리를 맡긴다. 하리만은 독일 사업가 프릿츠 티센의 증기선 회사 "함부르크 아메리카 라인"와 "독일 철강 조합"을 발굴하고 나치와 뉴욕간의 매개체로 삼았다. 일루미나티 자금은 뉴욕 유니언 뱅킹을 통하여 함부르크 아메리카 라인으로 넘어갔으며, 다시 나치로 건네진다. 나치의 모든 자금은 런던 금융가 "씨티 오브 런던"의 지배를 받는 뉴욕 "월 스트리트"에서 보내진 것이다. 독일 정보부 수장이자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빌헬름 카나리스는 로스차일드 수하였던 애버렐 하리만이 심은 첩자였으며,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소련 침공 작전이었던 1941년 바바로사 작전중에 애버렐 하리만과 빌헬름 카나리스는 스위스에서 매주 만나 독일군의 전체 작전 계획을 협의했다. - Averell Harriman, Dictator of Russia 1942-1944
스탈린이 유로 아틀란티시스트(Euro Atlanticists, Globalists, European Ruling Elite)들의 지시를 듣지 않고 독단적 행보를 취하기 시작하면서 멀어지기 시작하자, 일루미나티는 주치의였던 스탈린의 처남에게 모종의 지시를 내린다. 주사를 맞은 스탈린은 신경 쇠약에 걸렸다. 업무를 할 수 없었던 그를 대신하여,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주 소련 미국 대사 "애버렐 하리만"이 실질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2차 대전을 지휘했다. - 유스타스 멀린스 the $5 trillion Cold War hoax
일루미나티 유대인 은행가들과 히틀러와의 연락은 주로 소련이 심어놓은 스파이이자 나치 2인자인 부총통 마틴 보어만 (1900-?, circumcised Jew, 아쉬케나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종전후 사라져서 행방이 묘연한 인물인데, 소련으로 도주했거나 또는 히틀러와 함께 예수회가 깔아 놓은 Rat Line을 타고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마틴 보어만은 일루미나티, 소련, 나치 독일 3자 모두를 위해 일하면서, 일루미나티의 아젠다에 봉사했다. 그의 주변 나치 장교들은 물론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도 싫어했던 인물이다. - 헨리 매코우, Bormann Ran Hitler for the Illuminati
독일군의 5% 정도만이 나치당원이었으며, 유대인이거나 절반의 유대인 "partial-Jews" (미쉬링, Mischlinge)인 병사는 15만명 이상이었다.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으며, 이들이 시온주의자인지는 알 수 없다. 스스로를 독일인이라고 생각하고, 독일을 위해서 싸운 순수한 독일 병사로써의 유대인도 분명 있을 것이다. 유대인은 병사뿐 아니라 장교와 장군들, 제독들까지 독일군 전체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히틀러의 유럽 정복에 절대적 역할을 한 "맹공격의 아버지" 육군 원수 에르하르트 밀히(Erhard Milch)와 헬무트 뷜버그(Helmut Wilberg)가 있으며, 일부는 친위대에도 가담했다. - Bryan Mark Rigg Hitler’s Jewish Soldi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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