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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ary Hahn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리뷰추천 > 상세보기 | 2008-12-08 00:07:45
추천수 2
조회수   3,880

제목

Hilary Hahn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글쓴이

이승태 [가입일자 : 2007-11-15]
내용
얼마 전에 소개한 것처럼 힐러리 한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으로 브람스/스트라빈스키, 바흐, 멘델스존/쇼스타코비치 이렇게 세 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시 자주 듣는 것은 브람스, 멘델스존, 바흐 인데 이중에서 브람스의 곡으로부터는 멘델스존이나 바흐의 것과는 조금 다른 인상을 받고 있습니다. 낭만적인 멘델스존이나 바로크답게 화사한 바흐의 곡을 들을 때면 마음이 부풀어 오르면서 고조되는 즐거운 느낌을 받는다면 브람스의 곡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쪽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죠.



듣는 동안의 즐거움은 멘델스존과 바흐의 곡이 강하긴 한데 연주가 끝나고 난 후의 여운은 많이 못느끼는 반면 브람스의 곡은 들을 때의 강렬한 인상은 상대적으로 부족함에도 오히려 몰입과 집중을 하게 만들며 듣고 난 후의 여운도 제법 남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멘델스존과 바흐의 곡이 완전 연소하여 재도 남기지 않는 불과 같은 음악이라면 브람스의 곡은 흘러지나간 자국이 남아있는 물과 같은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남아있는 인상의 단편들을 긁어모아서 이런 감상적인 글이나마 조금 쓸 수 있나 봅니다...^^








앨범 속에 힐러리 한이 적어놓은 브람스 협주곡에 대한 노트가 있길래 요약해보았습니다.



브람스가 45세이던 1878년 여름 오스트리아의 어느 호숫가에 살면서 이 곡의 작곡을 시작했는데 원래는 4개의 악장으로 구상했습니다. 8월경에 1악장의 초안을 친구이자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요셉 요하힘(Joseph Joachim)에게 보냈고 이 후 수개월간 서로 서신을 주고 받으면서 요아힘의 개선 제안을 브람스가 받아들이거나 혹은 거부하면서 작곡해나갔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브람스는 2개의 중간 악장을 버리고 그가 연약한 아다지오(Feeble Adagio)라고 불렀던 것으로 대체하며 요아힘에게는 1악장의 말미에 있는 카덴차의 작곡을 의뢰합니다. 다음해인 1879년 새해 첫날 라이프치히에서 요아힘의 바이올린, 브람스의 지휘로 초연, 호평을 받지만 부족함을 느낀 두 사람은 2주 동안 곡을 수정합니다. 1월 중순 비엔나에서 다시 요아힘이 수정된 곡을 연주했을 때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지만 다른 곳으로부터는 반대로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어느 비평 - 오케스트라는 연주를 위해 이런 쓰레기 같은 작품을 익혀야만 했다고 탄식

파블로 사라사테(Pablo Sarasate) - 곡은 괜찮지만 오보에가 홀로 연주하는 중간악장이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은 절대 연주하지 않겠다고 함

요셉 헬메스베르거(Joseph Hellmesberger) - 이 협주곡은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라 바이올린에 적대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빈정댐



브람스는 두 번째 협주곡을 만들다 악평들 때문에 의기소침하여 초안을 불속에 던져버리고는 다시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작곡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모드 파웰(Maud Powell), 브로니슬로우 후베르만(Bronislaw Huberman), 에프렘 짐발리스트(Efrem Zimbalist) 같은 새로운 세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에 의해서 연주되면서 1차 대전이 일어난 시기에 이르러서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나란히 평가받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브람스의 경우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기에 협주곡을 작곡하면서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 같습니다. 이 곡이 브람스만의 곡이 아닌 요아힘이라는 친구와의 공동작업의 결과라는 것과 1악장의 카덴차를 작곡한 사람도 바로 요아힘이었고 그것도 브람스로부터 크리스마스 때 의뢰받아서 바로 다음해 첫날에 브람스의 지휘와 요아힘의 연주로 초연을 가졌다는 것도 재미있는 내용입니다. 요아힘이 젊은 시절의 브람스에게 슈만 부부를 만나보도록 격려하였다고 알고 있는데 브람스의 영원한 사랑과 헌신의 대상이었던 클라라 슈만과의 만남에서도 친구였던 그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힐러리 한은 앨범의 노트에서 7살 때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처음 들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또 홈페이지에서는 네 살이 되기 전에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재능을 일찍 발견하여 잘 키운 것 같습니다. 나중에 커티스 음악원에서 그녀를 가르친 사람이 야사 브로드스키(Jascha Brodsky) 라는 분인데, 이 분은 프랑스에 살았던 러시아 망명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위에서 언급한 신세대의 한 사람인 에프렘 짐발리스트의 브람스 협주곡을 파리에서 듣고는 일종의 종교적 계시 같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그에게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이니 무협지식으로 따진다면 힐러리 한의 사부(師父)와 사조(師祖)에 해당하는 분들이겠습니다.

작곡가에게는 좋은 친구가 있었고 연주자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으니 역시 사람에게는 좋은 인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1악장 - Allegro non troppo - 빠르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혹시 풀턴회수장치라고 들어보셨는지요? 군사첩보드라마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것인데, 비행기의 착륙이 어려운 험지에서 풍선에 매단 줄을 침투 공작원이나 납치한 인질의 몸에 묶어서 저공으로 비행하는 수송기로 낚아채는 장비입니다. 신체에 가해지는 중력가속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기도 한다는데, 이렇게 공중으로 획 채여 올라간 사람이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기에 완전한 수동성이나 무저항성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힐러리 한이 연주하는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을 때면 가끔 그런 느낌을 받곤 합니다.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도입부 연주가 시작되면 마치 풀턴회수장치에 몸을 묶은 사람의 심정이 되었다가 이윽고 힐러리 한의 약 2분 30여초 간의 솔로 바이올린에서 획 마음을 낚아 채이게 됩니다. 그리고 앉거나 누운 자세 그대로 몸을 이완시킨채 3악장이 끝날 때까지 음악에 자신을 맡겨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도입부에서부터 마음을 홀딱 빼앗겨 버린 채로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덧 1악장을 마무리하는 카덴차와 트란퀼로(Tranquillo)로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오케스트라의 협주 소리는 문득 사라지고 없으며, 빛이 없는 어두컴컴하고 막막한 공간에서 홀로 연주하는 듯한 솔로 바이올린의 선율을 듣고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카덴차의 정적을 밀어내듯이 들려오는 트란퀼로의 바순과 오케스트라 소리가 솔로 바이올린과 어우러지기 시작하면 마치 어둠속에서 갈래갈래 퍼지기 시작하는 희미한 빛살, 기나긴 침묵 끝에 들리기 시작하는 소근거림, 혹은 매끈한 유리 표면에 퍼지기 시작하는 미세한 균열 같은 인상을 받곤 합니다. 아마 순간의 느낌을 재빨리 파악하는 인상파 화가라도 되었다면 이 부분을 들을 때마다 여러 장의 서로 다른 모습의 그림들을 그려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악장 - Adagio - 느리게



오보에에 의한 주제 선율 연주로 시작되는데 곧 솔로 바이올린이 같은 선율을 이어받아 분위기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끌고 들어감으로써 노란 은행잎이 수북하게 쌓인 한적한 공원의 산책길에서 발에 채이는 낙엽들을 휘휘 저으면서 “그럼, 세상살이 다 그런 거지 뭐...” 라고 되뇌게 하는 것만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잔뜩 머금은 악장입니다. 교향곡 3번의 3악장과 함께 브람스 특유의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인 인상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절제된 음악으로써 이쪽과 저쪽의 경계선상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인간 정신의 심층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악장 - Allegro giocoso - 빠르고 활발하게



사색과 상상도 좋지만 이제는 그만 정신 차리고 현실로 돌아가라는 각성제 같은 악장입니다. 세차게 휘몰아치는 브람스 음악의 또 다른 면이 나타나는데 풀턴회수장치에 묶인 내 마음의 줄을 풀어내는 곳이고 연주시간도 세 악장 중에 제일 짧습니다.








여러 장르의 다양한 곡들로부터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얻고 있지만 몰입감이라는 측면만 살펴본다면 개인적으로 힐러리 한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만한 앨범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의지에 의한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이라기보다 특정 연주자와 연주단체가 녹음한 앨범으로부터 얻는 지극히 수동적이고 무저항적인 몰입과 집중이라는 점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또한 자신의 기호에 맞는 곡을 찾았을 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속에 간직하는 과정 속에 음악이라는 취미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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