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ed Link: http://cafe.naver.com/buddhapalmcafe/308
'깨달음의 길 밟아가는 기원문’을 마치며
결론적으로 소승, 대승은 금강승불교의 성불, 명광(明光)의 지혜와 환신(幻身), 그 위대한 비밀의 합일을 이루기 위한 예비 코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아가 경전 현교와 탄트라 밀교의 합일이라는 완벽한 깨달음의 길을 모르고 성불을 논하고 불교를 판단하는 일은 글자 그대로 성급한 결론이며 ‘바보들의 천국’이다.
다시 한번 깨달음의 길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하이웨이, - 소승, 대승, 그리고 금강승불교의 - 의 수행과정을 되돌아보자.
계정혜 삼학을 통해 사성제, 즉 고집멸도의 진리와 12연기법을 문혜, 사혜, 수혜 등 삼혜(三慧)를 동원해 완성시키는 것이 소승의 수행법이다.
삼혜(三慧)중, 수혜(修慧), 즉 지관(止觀)명상은 후반부의 주요수행을 이루며, 그 성취에 따라 네 가지 성자(聖者)의 지위를 차지한다. 이때의 수행자의 마음가짐은 고통으로 얼룩지는 삼계(三界)의 윤회의 세계에서 해탈하겠다는 출리(出離) 또는 염리(厭離)의 마음이다.
따라서 소승의 지관명상은 욕계에서 색계의 하늘세계, 그리고 무색계의 하늘세계를 올라가보며, 결국은 삼계를 버리고 떠나는 명상 수행이다.
대승에서는 출리(出離)의 마음에 더해 보리심(菩提心)이 주요 역할을 하며, 그 수행방식은 보리심(菩提心)의 완성을 위한 6바라밀의 실천에 있음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승에서는 소승의 출리(出離)의 마음을 버리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고교생들은 중학생 때의 공부를 모두 버린다는 결론과 마찬가지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승의 출리(出離)의 마음은 대승의 보리심으로 발전 확대되는 준비 코스라고 생각하면 틀림없을 것 같다. 삼혜(三慧)중, 수혜(修慧)를 닦는 지관(止觀)명상도 삼계(三界)의 윤회의 세계에서 해탈하겠다는 출리(出離)의 명상에서 완벽한 반야바라밀을 동원하는 공(空)의 명상으로 그 명상 대상이 본격화될 뿐이다.
따라서 소승의 코스는 대승과의 공통의 교과과정이며, 소승의 교과는 대승을 위한 준비코스라고 보면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금강승 수행자에게는 대승의 공(空)의 명상이 금강승의 수행에 와서는 탄트라에 숨겨진 구생(俱生)의 대락(大樂)의 지혜로 공(空)을 직관하는, 낙공(樂空)무별의 명광(明光)의 지혜를 닦는 준비코스가 된다.
이와 같은 일관된 불교수행법을 통해 소승의 아라한 고빗길을 통과해 대승의 보살의 과정을 지나 완벽한 부처님의 깨달음(성불), 바즈라다라의 경지에 도달하기 까지, 계속 걸어야하는 일목요연한 ‘수행의 단계’는 수행자들을 위한 불가결한 로드맵이다. 우리는 지난 20여회에 걸쳐 ‘깨달음의 길 밟아가는 기원문’에 담긴 깊고 넓은 귀중한 가르침의 빙산의 일각이라도 살펴본 셈이다.
정통적 불교수행의 방식은 커녕 경전공부 자체까지 기피하는 극도로 괴이한 전통이 근대에 들어 대세를 이뤄온 곳이 우리나라 불교계다. ‘깨달음의 길 밟아가는 기원문’이 보다 많은 우리나라 불자들의 수행 가이드가 돼, 중생들을 구제할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그 기원문의 해설을 21회로서 마친다.
------------
불교는 모든 중생(생명체)들의 고통과 문제점을 해결해주며 행복과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부처님이
전하신 가르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하신 불교는 양(팔만대장경)이 너무 방대하지만, 그 내용에는 가르침을 들을
제자들의 서로 다른 근기(根機)를 생각하시어 수준의 차이를 두셨다. 따라서 불교는 크게 소승(小乘)
불교, 대승(大乘)불교의 두 가지 수레(乘)로 나뉜다. 이 두 수레의 가르침은 모두 경전(불경)을 통해
공개됐음으로 드러나 있고 오픈된 가르침, 현교(顯敎)라고 부른다.
그러나 가장 높은 수준의 내용인 이 대승 밀교(密敎)의 전수는 경전이 아닌 탄트라(續)에 비밀히 전하셨고, 너무나 귀중한 그 내용이 오픈되지 않은 대승 불교의 비밀문서에 해당하기 때문에,
지도나 수행에 있어 철저한 보안이 요구됨으로 밀교(密敎) 또는 금강승(金剛乘) 이라고 불린다.
금강승불교는 탄트라불교로도 통하며, 대승밀교(密敎), 비밀진언(秘密眞言) 등의 동의어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힌두교에도 브라만교가 불교 금강승을 모방한 유사 힌두 탄트라가 등장한 까닭에 이 둘이
혼동을 빚기도 했고, 역사적으로 하위 수레 불교부파들에 의해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불필요한 오해의
대상이 되여 왔다.
그러나 금강승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현교(顯敎)인 소승과 대승 불교는
금강승을 수행할 예비기초과정에 해당되며,
소승과 대승불교를 철저히 수행한 뒤에야
금강승 수행의 접근과 수행이 가능하다.
불교의 구경의 목표인 완벽한 깨달음과 성불은
금강승에서도 가장 높은 무상요가탄트라의
제2단계에서나 가능하다.
수행의 목표에서도 금강승은 소승이나 대승 등 현교와 다르다.
소승의 목표가 자기 자신을 위한 아라한의 해탈이며,
대승의 목표가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위해
활동하는 높은 보살이라면,
금강승은 완벽한 깨달음을 이루어 모든 중생들을 자유자재로 구원해 줄
전지의 능력을 갖추신 부처님을 이루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방식이나 수행자들의 수행특징도 소승이나 대승에 비해 완벽히 다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소승이나 대승 현교를 설하실 때는 머리 깎은 출가 스님 또는 곱슬머리 천신(天神)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셨다.
그러나 금강승을 설하실 때의 부처님은 많은 머리와 팔을
보이는 분노상의 모습을 띄시기도 하며 아름다운 모습의 여신들과 함께 등장하신다.
수행방법도 번뇌 망상의 대상인 가족이나 세간을‘버리며’출가해
탐욕의 대상에서 멀리 떠나는 소승,
세간에 뛰어들어 중생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공덕과 지혜를‘쌓아가는’대승,
그리고 세간과 출세간을 분별하지 않고 구도자가 중생을 도울 능력을 얻기 위해
곧장 번뇌의 대상을 수행으로 활용하는 방편으로‘바꾸는’
금강승 수행이 그것이다.
밀교의 실제 수행경험에서 우러난 안내서
"금강승이란"
呑月 長剛 서병후 저(금강승불교 신인종 회주)
종려시의 삼사라에서 주인공이........ 금강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