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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요 사색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음악 듣기에도 아주 좋은 계절입니다. 꽃이 피고 초목이 제 색깔을 찾아가는 봄이 밝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때라면 한창의 여름을 보내고서 동면의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은 지나온 길을 더듬고 회고하는 것이 계절의 성격에 알맞기에, 음악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최신 유행곡을 듣는 것 보다는 지나간 시절의 곡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서 추억에 잠겨보는 것도 꽤 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추억의 곡들이 떠오르는지요.
예전에는 금전적인 능력이 충분한 어른들이나 LP 를 모은 반면에, 용돈이 궁한 학생들은 FM 라디오를 듣고서 마음에 드는 곡들을 모아놓았다가 레코드 가게에 가서 카세트 공테이프를 고른 다음에 노래 목록을 맡기고 이틀이나 사흘정도 기다리면 녹음된 테이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목록의 길이에 따라 30분, 60분 또는 90분 짜리 테이프를 고르게 되는데 몇 곡이나 녹음될지 정확한 분량을 알 수 없어서 더 좋아하는 노래일수록 목록의 위에 올라가게 마련이었고 일반 테이프보다 비싼 메탈 테이프에 녹음 한번 하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그런 시절에 알았던 가수이며 1946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니까 이제는 환갑이 지난 할머니가 되어버렸군요. 늙어 버린 그녀의 근래 사진을 보면서 싱그러운 청춘은 순식간에 지나갈 뿐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지나간 순간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이야 부질없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진작에 세상을 떠난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휴일에서의 우아한 공주의 모습으로 남아있듯이,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모습이 아닌 청춘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던 마리안느 페이스풀로 기억하고픈 희망으로, 나중에 그녀들을 기억하는 사람마저 사라지면 혹시 그녀를 기억했던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어학자에 대학 강사였던 아버지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 발레 무용수였던 어머니등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20 세가 채 되기도 전에 데뷔(처음에는 가수로 나중에는 배우로)하여 대중들로부터 큰 명성과 관심을 얻었지만 조명받는 인기 연예인이 누리는 삶의 어두운 이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약물중독과 복잡한 사생활로 인하여 인생의 굴곡을 심하게 겪은 여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생의 심한 부침이 그녀의 자유로운 성격이나 생활태도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이나 특히 악동의 이미지가 강한 롤링 스톤스의 멤버들과의 사귐 같은 주변 환경에 의해서 더 악화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당시 사람들에게 순진무구한 천사와 사고뭉치 악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으니 신이 그녀에게 커다란 재능과 매력을 선사하는 순간에 조금 질투했거나 아니면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려준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그녀의 삶을 조금 헝크러지게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전설이 되고...전설은 신화가 되었다...”
‘반지의 제왕 - 1편’ 에서 엘프 여왕 갈리드리엘이 들려주는 나레이션인데 제가 무척 좋아하는 대사라서 한번 인용해 보았습니다. 물론 전설이나 신화라고 하기에는 터무니 없겠지만 마리안느 페이스풀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그녀의 신데렐라 같은 데뷔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습니다. 1964년 어느날,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기도 하며 캠브리지에서 예술을 전공한 존 던바라는 남자와 함께 롤링 스톤스가 관련된 파티에 갔다가 그들의 매니저의 눈에 띄어 계약을 맺고 처음 녹음한 곡이 ‘As Tears Go By' 입니다. 순진하다 못해 백치미까지 느끼게 하는 젊고 아름다운 영국 여성이 부르는 노래의 놀라운 매력은 이 곡을 단숨에 영국과 미국의 팝 차트에 올려놓으면서 그야말로 인생역전의 신데렐라와 같은 화려한 인생을 그녀에게 선사합니다.
요정이 마련해준 구두를 신고서 무도회에 갔다가 왕자를 만난 것이 신데렐라였다면 마리안느 페이스풀은 왕자(남편)가 직접 에스코트해서 파티에 데려가 준 점이 다르고, 신데렐라 이야기는 동화답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현실 세계의 마리안느 이야기는 '그리고 그녀는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다.' 라는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결혼생활은 얼마 못가 끝나버렸고 이후에 등장하는 뭇 남성들과의 스캔들이나 약물복용 같이 전혀 동화스럽지 않는 불쾌하고 어두운 이야기들로 엮어집니다. 그러나 60년대의 화려한 영광만 기억된 채 잊혀진 가수로 전락해버린 것이 아니라 스타일을 확 바꿔버린 앨범 ‘Broken English’ 로 70년대 후반에 재기를 해냈으니 그녀를 위해서도 그리고 아직까지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As Tears Go By’ 를 만든 이야기도 널리 전해집니다. 믹 재거와 다른 멤버 한 사람을 욕실에 같이 가두어놓고서 이 곡을 만들도록 종용했고 그들의 파티에서 만난 마리안느 페이스풀을 유혹(?)해서 이 곡으로 가수로 데뷔시킨 사람이 롤링 스톤스의 매니저였던 앤드류 올드햄 입니다. 그런데 ‘As Tears Go By' 와 가끔 제목이 헷갈렸던 노래가 ‘As Time Goes By' 인데, 바로 유명한 고전 영화 ‘카사블랑카’ 에서 나오던 노래입니다. 사실은 그들이 만든 곡의 이름도 앤드류 올드햄이 ‘As Time Goes By' 에서 힌트를 얻어서 Time 대신 Tears 로만 바꾼 것이라고 하는군요.
카사블랑카 이야기가 나온 김에 - 저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중후한 목소리로 ‘As Time Goes By' 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화에서는 클럽하우스 주인인 험프리 보가트가 헤어진 옛 애인을 생각나게 하는 이 곡의 연주를 금하고 있는데, 잉그리드 버그만이 클럽의 피아노 연주자 샘에게 연주를 청합니다. 이 곡이 흐를 때 보가트가 들어와서는 샘에게 화를 내다가 그녀가 돌아왔음을 알게 되죠. 빠질 수 없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추억의 대사 한마디!
“샘, 그걸 연주해줘요.”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재기 앨범인 ‘Broken English' 에서 들려주는 텁텁하고 꺼끌꺼글한 목소리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가는, 그녀의 한창 때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예전에 좋아했던 어떤 사탕을 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나곤 합니다. 육각형 아니면 오각형의 모양에 갈색이었는데 스카치... 라는 이름이었고 부드러운 버터 맛이어서 청포알 맛이 나는 사탕과 함께 제일 많이 먹었죠. 끝자락이 사르르 떨리는 미묘한 바이브레이션이 가미된 복슬복슬하고 포근한 울(Wool) 천으로 부드럽게 감싸주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여성 특유의 보호본능까지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F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This Little Bird' 란 노래를 제일 좋아했던 당시에는 그녀에 대한 가십성 이야기들은 전혀 몰랐거니와 사실은 그녀의 얼굴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인터넷에 올라온 데뷔 시절의 영상을 보고 나서야 아하! 이 여인이 마리안느 페이스풀이구나! 올리비아 뉴튼 존(알고 있는 팝 가수 중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못지않게 예쁘고 매력적이었네! 라고 감탄했었습니다. 순전히 노래만으로 내 마음을 사로 잡았던 ‘This Little Bird' 의 가사 내용을 지금에서야 음미해보면, 바람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새처럼 그녀도 얽매이지 않는 삶(사회적 통념에서 보자면 이성적이거나 건전한 도덕보다는 본능적인 욕망에 더 사로잡힌 것으로 보이지만)을 살게 될 것임을 미리 예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원 가사에는 새를 She 가 아닌 He 로 표현하고 있으니 그냥 내 머리 속의 쓸데없는 잡념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틀스의 ‘Yesterday' 도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노래가 더 쓸쓸한 여운을 전해주기 때문에 자주 듣게 되는군요.
위 앨범 속의 안내 책자에는 영국 태생의 가수이자 배우였던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지나온 삶을 함축해주는 짧은 평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삶은 그녀에게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 너무 많은 일들이 너무 빨리 일어났기에 - 그러나 그녀에게는 변함없이 충실한 지지자들이 있으며 그녀의 노래들에 스며있는 카리스마적인 매력은 시간를 초월하여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