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 미국, 중국 사이에서 활로를 모색하던 김정일 위원장이 결국 중국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북한 내부에서는 대남-대미 라인이 사라지고 친중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암중모색’이 끝난 것 같다. 지난해 10월께부터 북한은 남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의 세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해왔다. 그 결과 남한이나 미국 쪽에는 살길이 없다고 보고, 모든 초점을 중국과의 관계 복원에 맞추기 시작했다.
대남·대미 관계 현장에서 이에 따른 파열음이 벌써부터 일기 시작했다. 이쪽 분야에 종사하던 북한 내부의 조직이나 인맥이 최근 권력 전면에서 사라지거나 철수했고, 대신 친중파가 전면에 떠오른다. 친중파로 분류되어온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리제강 제1부부장이 이끄는 조직지도부로부터 부패 척결 및 사회 정화 운동의 지휘권을 넘겨받은 것은 바로 이같은 권력 이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이나 미국 정부도 북한의 예사롭지 않은 태도를 접하면서 적잖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남한 정부에 식량. 비료 요구하지 않을 듯
지난 3월 초 청와대 외교안보팀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발생했다. 북한이 올해에는 남쪽 정부에게 식량과 비료 지원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는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인수위 외교안보팀 시절부터 새 정부 대북 정책은 북한이 현재 심각한 식량난에 처해 결국 남쪽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전제로 해왔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남북 관계의 물길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데에 정권 내부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다.
인수위 외교안보팀이 작성했다는 ‘대북정책 로드맵’에는 ‘남북관계 물길 바로잡기’니 ‘갑의 위치에서 주도권 장악’, ‘대북지원의 경우 북한의 성의가 담긴 상호주의가 필요하다’는 따위 결의에 찬 용어가 가득 담겨 있다. 심지어는 ‘북한이 남한 길들이기를 시도할 경우 남한도 북한 길들이기로 맞대응’, ‘대남 경제 의존도가 증대된 상황을 최대한 활용, 경제적 수단을 통한 북한의 행동 변화 유인’ 같은 문구도 들어 있다.
청와대 외교안보팀이 각 부처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방안 역시 북한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을 전제로 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 내용은 △쌀 50만t, 비료 40만t을 차관으로 주던 것을 무상으로 주는 대신 양을 대폭 줄이고 △차관일 경우는 하기 어려웠던 분배 모니터링을 강화해 투명성을 높이고 △예년에 비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산가족 상봉과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와 상호 연계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북한이 받기 싫어하는 모니터링과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등과 겹겹이 연계하면서 나름으로 ‘창조적이고 차별화한’ 방안이라고 짜놓았지만 북측이 남쪽 정부에는 요구하지 않겠다고 함으로써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 되어버렸다. 관계 소식통은 “북한의 방침이 알려지면서 모두 없었던 일로 하는 등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라이스 방북도 필요 없다" 통고
헛물을 켜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3월13일부터 15일까지 제네바에서 있었던 힐·김계관 회동에서 힐 차관보가 3월 초 베이징에서 김계관에게 바람맞은 데 이어, 거푸 ‘수모’를 당했다는 사실이 취재 결과 드러났다. 워싱턴 사정에 밝은 전문가에 따르면, 힐 차관보는 아무것도 손에 든 것 없이 오직 라이스 장관 방북을 무기로 북한을 설득하려 했다. 즉 라이스 장관의 방북에 맞춰 테러지원국과 적성국 교역법 문제를 일괄 타결해줄 테니, 그 전에 북한이 성실하게 핵 신고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계관이 “라이스 장관 방문에 대해 관심 없다. 테러지원국 해제와 에너지 지원 약속이나 지켜라. 그럼 우리도 신고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라이스 장관 방북은 김정일 위원장의 희망 사항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가장 핵심 대북 정책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4월의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면 5월께 라이스 방북을 통한 북·미 관계 정상화의 순서를 밟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구상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 내부에서 대남 관계와 대미 관계를 담당해온 조직과 인맥이 최근 전면에서 철수하거나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이 단순히 전술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대남 관계에서 주목할 것은 당 조직지도부의 원대 복귀이다. 북한 노동당 내 대표적 ‘초당파(김일성 주석의 가계에만 충성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초당파라 하며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인물인 리제강 제1부부장이 이끄는 당 조직지도부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민경련-민화협-통일전선부를 검열한 것은 바로 남한의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새로운 고위급 라인으로 대남 라인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남쪽의 새 정부팀이 지난 2월 초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방한을 거부해버림으로써,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대북 소식통은 “당 조직 지도부가 남북 관계에 관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성과가 없어 손을 떼고 원대복귀해버렸다”라며 아쉬워했다.
대미 관계에서는 그동안 미국과 교섭을 책임졌던 외무성 라인의 몰락이 거론된다. 이미 ‘대미 관계는 외무성 손을 떠났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외교가에서는 제네바 회담이 끝나자마자,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다음 달 평양으로 철수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일을 매우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박길연의 후임으로 더 강성 인물이 등장할 것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대미 관계를 지금까지처럼 하지 않겠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결의가 느껴지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 북한의 심상치 않은 행보는 지난해 이명박 당선자 주변에서 절제되지 않은 발언이 계속될 때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 이후로도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하는 발언이 계속 이어지자 미국 정부조차 신경질적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한국 정부에게 ‘공공연한 연계(explicit linkage)보다는 암묵적 연계(implicit linkage)가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는 얘기가 외교가에 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식량 지원 약속 이후 친중파 떠올라
지난해 10월부터 당 조직지도부의 대남 기구 검열과 뉴욕 필 공연을 계기로 한 라이스 방북 문제 등 대남 관계와 대미 관계에 대한 ‘마지막’ 타진에 들어갔던 김정일 위원장은 제3의 비상구로 중국이라는 문호를 열어두었다. 10월 초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중앙검찰소 중앙재판소 등을 총괄하는 당 행정부를 부활하면서 자신의 매제이자 친중파인 장성택을 책임자로 임명해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처럼 남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 등 세 방향으로 활로를 모색하던 2월 초 남한이 김영남 방한을 거부하고, 이어 2월13~15일 북·미 간이면 협상에서 라이스 방북이 사실상 무산(<시사IN> 제26호 참조)되면서 김 위원장에게는 장성택의 대중 라인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2월 말에서 3월 초 장성택에게서 낭보가 전해졌다. 바로 중국이 상당한 양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함께 러시아로부터도 비료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3월1일 김 위원장이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갑작스럽게 찾았던 배경에는 중국의 식량 지원 약속에 대한 답례의 의미도 포함됐다고 최근 확인됐다. 대북 소식통에 의하면 이 역시 장성택이 주선한 일이라고 한다. 결국 믿을 곳은 역시 중국밖에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장성택이 영원한 라이벌인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제치고 다시 권력 실세로 전면 떠오르는 한편 남한과 미국에 대한 태도가 살벌해지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총선 전과 대통령 방미 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지난 2월 초 남한 적십자 본부가 북한 측에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남북 적십자 회담을 제의했는데, 총선 전인 3월 말이나 4월 초 북한 측이 회담장에 나와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는 대신 쌀과 비료를 지원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2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한 업무를 적십자에 일임하면서 약 3000억원에 이르는 재원을 적십자로 이관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가 아닌 적십자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의 대가로 북한 측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때 정부 측이 이를 방해하고 나설 경우 북한은 이를 계기로 ‘판을 깨면서’ 이명박 대통령 방미 전 서해 일대에서 무력 충돌 사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가 도는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친중 일변도로 나가는 것을 이제 막을 도리가 없게 됐다. 또다시 2인자로 기사회생한 장성택은 ‘살기 위해서는 중국에 붙어야 한다’는 것을 신조로 하는 ‘북한판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한의 ‘친미 실용주의’와 북한의 ‘친중 실용주의’ 간에 신냉전 대립전선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있으리라 예상되는 김정일 방중이야말로 불길한 미래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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