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또 하나의 명반이 탄생하다. (이반 피셔 / 베토벤 교향곡 7번)
"1951년 1월 19일 헝가리에서 태어난 지휘자 이반 피셔!
아직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
제가 신문 편집국장이라면 아마 이런 문구로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이반 피셔의 베토벤 교향곡 7번, 카라얀과 클라이버의 연주에 결코 뒤지지 않는 완벽함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네요. 카라얀과 클라이버의 연주가 3악장과 4악장에서는 폭풍우 같은 힘과 템포로 청중을 사로잡지만, 부드럽고도 아지랑이 같이 피어오르는 피셔의 1,2악장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거친 연주는 잘못하면 산만해질 수 있는데, 피셔는 3,4악장에서도 템포와 강약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응집력 있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부드럽지만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화를 통한 힘이 느껴져 아주 경쾌합니다. 부다페스트 축제 오케스트라를 이 정도로 끌어올린 피셔의 역량이 놀랍기만 합니다. 고전파의 음악을 낭만주의 음악으로 만들어버리는 카라얀과 클라이버의 연주가 이제 슬슬 지겨워진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건 고전파 음악이야!"하며 흐트러짐이 없는 음악을 들려주는 피셔의 연주로 갈아타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이 처럼 기분이 좋아진 게 얼마만인지... 녹음도 굉장히 좋아서 녹음, 연주 모두 만점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보너스로 들어있는 세 곡도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줍니다. 아다지오, 신포니아, 론도의 배열도 편집을 참 잘 한것 같습니다.
2. 한국의 비스펠베이 (조영창 / 하이든 첼로협주곡 1,2번)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첼로인 것 같습니다. 여기 근사한 첼로 연주를 하나 소개합니다. 조영창! 음악계에 종사하거나 클래식 매니아가 아니면 생소한 이름일 것입니다. 조영창은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제 50대의 나에에 접어든 중견 첼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개인 사정으로 연주활동과 녹음을 거의 하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무척 화려했지요... 그렇고 그런 경력은 차치하고, 뉴욕타임즈는 1983년 그의 콘서트를 "올해의 가장 흥미진진한 음악 행사"라고 평가했고, 그의 연주는 "세밀한 통제력과 끝없는 발상의 힘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이런 음악가가 개인 사정으로 더 꽃피우지 못하고 묻혀있었다는 건 우리나라 음악계에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좀 늦기는 했지만 이 음반을 포함해 이번에 알레스 뮤직에서 발매한 세 음반(베토벤:첼로소나타 전곡 /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삼중주)은 메마른 국내 음악계에 단비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정트리오, 김영욱, 장영주, 장한나 등 잘 알려진 연주자가 아니여서 이 음반을 선택하는데 주저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디를 열어 들어보는 순간 그것이 기우였음을 알았습니다. 앞서 뉴욕타임즈의 평가대로, 녹음의 차이를 배제하고 들어본다면 비스펠베이(네덜란드)의 연주와 비교하더라도 그 차이를 못 느낄 정도입니다. 1996년에 결성된 쾰른 텔로스 앙상블의 차분한 오케스트레이션에 힘 입어 경쟁이 아닌 조화로움을 듬뿍 선사해 주는 훌륭한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하이든 첼로협주곡 1,2번! 무르익어가는 가을 정취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곡이 아니겠습니까? 국내연주자라는 이상한(?) 선입견만 버린다면 누구에게든 매우 좋은 하이든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3. 진정한 소리꾼 (강권순 창작가곡집 / 첫마음)
진정한 소리꾼 강권순의 창작가곡집 '첫마음'을 들어본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친근한데,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경이롭다!"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1. 친근하다 : 노래 대부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이기 때문이다.
2. 어렵다 : 창작가곡집이라는 장르에서 보듯이 작곡가 김대성의 곡은 현대음악이고, 게다가 강권순의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는 하늘에서 내려온 악기 같아서, 단순한 노래들이지만 굉장히 집중해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3. 경이롭다 : 바로 위에서 말했듯이 강권순이 부르는 노래는 이미 사람의 경지를 넘어섰고, 서양악기(피아노)와 국악기(가야금)의 조화로움이 반주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속지(해설지)에는 노래 하나하나에 붙은 작곡가 노트가 있어 듣는 이의 감상을 돕고 있다. 이 쉽지 않은 노래들을 계속해서 듣다보면 아주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릴 적 아주 깊은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감흥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물물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들도 이 노래집을 꼭 들어보길 권한다. 상업주의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이 그리운 이들은 여기 모여라!^^
* 음질은 좋은 편이지만 모든 음역이 약간 부스트 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