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이 당선자가 해도 될 ‘선의(善意)의 위약’-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경제에 관한 한 자신감이 남달랐다. 선거 닷새 전 증권사를 방문해선 ‘주가 3000시대’를 장담했다. 집권하면 당장 내년 중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돌파하고, 5년 안에 5000도 돌파할 수 있다고 했다.
순진한 투자가들은 이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오늘부터 ‘주가 3000’ 장담은 잊어주는 게 좋다. 이 당선자는 말을 안 한 셈, 국민들은 못들은 셈 쳐야 한다. 그래야 나라경제도, 국민도 편하다.이 당선자의 경제 운용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크다. 하지만 주가란 대통령 희망대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 그래도 주식시장엔 온갖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내년엔 잘해야 2500 정도라고 모든 전문가들이 전망한다.
사실은 주가 3000 발언을 잊어야 하는 좀더 절실한 이유가 있다. 주가 수치가 이 당선자 국정 운영의 족쇄가 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혹여 이 당선자가 발언에 책임을 느낀다면 이것이 더 문제일지 모른다. 주가를 띄울 생각이라도 한다면 국민들이 나서서 말릴 일이다. 역대 정권의 주가 부양 조치는 매번 엄청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곤 하지 않았는가.
주가뿐 아니다. 이 당선자의 정책들은 비교적 실천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그 중에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가까운 공약도 적지 않다. 예컨대 ‘10년간 7% 성장’ 공약이다. 한국 경제는 잠재 성장률 4%대의 저(低)성장 늪에 빠져 있다. 그런데 이 당선자는 이를 당장 두 배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이 당선자의 설명은 이렇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도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성장률이 올라가는 ‘이명박 프리미엄’이 1~2%포인트는 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얘기이긴 하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린 데는 노무현 정부의 ‘불확실성 리스크’ 탓이 컸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환경 탓도 있겠지만, 기업이 투자할 아이템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기업이란 돈을 벌 것 같으면 지옥에라도 투자를 한다.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은 근본 원인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이 아무리 미더워도 대통령 얼굴만 보고 경제가 마술처럼 살아날 수는 없다.
하기야 돈 풀어 경기 부양하면 한두 해 7% 성장은 간단하다. 그러나 인위적 성장은 후유증만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요컨대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7%란 수치 자체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깨에 힘 빼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7% 성장률이 나오는 것이다. 처음부터 7% 성장을 목표로 무리하면 오발탄이 나올 수 있다.
신용불량자 대사면 공약은 또 어떤가. 정부 예산, 그러니까 국민이 낸 세금으로 신불자(信不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포퓰리즘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노무현 정부조차 차마 못 꺼냈던 카드다. 선거가 급했던 이 당선자로선 이것저것 가릴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선거가 끝났으니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국민들도 그런 ‘선의(善意)의 배신’은 눈감아 줄 용의가 있다.
그 중에서도 정말 버려야 할 것은 ‘자리 약속’ 아닌가 싶다. 이 당선자의 선거캠프엔 각계에서 끌어들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고 한다. 선거캠프 사람들은 아마도 이 당선자 혹은 측근으로부터 암묵적인 자리 약속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들을 다 챙기려면 정권 내내 낙하산 인사를 내려 보내다 날 샐 판이다. 안 그래도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무(無)자격자 낙하산’에 5년 내내 시달렸다.
어설픈 자리 약속은 눈 딱 감고 잊은 척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한다고 왜 약속을 안 지키냐 따질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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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대한 반박기사
<조선일보> 같은 경우는 24일자 사설에서 아예 '당선자 공약 타당성 재검토 기구'를 둘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에서 내세운 공약 92개의 절반 이상이 '경제 공약'이고 "그 많은 경제 공약들이 실제 정책으로 옮겨도 될 정도로 잘 다듬어졌다고 하기 어렵다"면서 "공약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버릴 것, 정리할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정리할 것"을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재조정하거나 버릴 대표적 공약으로 10년동안 평균 7% 성장에 10년내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이라는, 이른바 '747공약'과 한반도 대운하 공약, 720만 신용불량자 대사면, 서민 주요 생활비 30% 공약, 12조원 감세 공약 등을 들었다. 한 마디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내놓았던 경제공약의 핵심 알맹이 공약은 다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내내 이룰 수도 없는 경제 공약으로 국민들을 기만했다는 이야기인가?
<조선일보> 박정훈 경제부장은 이미 22일자 칼럼 '이 당선자가 해도 될 선의의 위약'에서 이들 경제 공약들은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면서 "국민들도 그런 '선의의 배신'은 눈감아 줄 용의가 있다"고 쓰기도 했다. "선거가 급했던 이 당선자로선 이것저것 가릴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표를 얻기 위한 '무리한 공약'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훈 경제부장은 "기업들이 투자를 꺼린 데는 노무현 정부의 '불확실성 리스크' 탓이 컸"지만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했다. "환경 탓도 있겠지만, 기업이 투자할 아이템을 못 찾았다."
황당하다. 그 진짜 이유가. 이명박 당선자 측 인사들과 일부 언론은 앞다퉈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바람을 잡고 있는데, 정작 <조선일보>가 거꾸로 가고 있는 것도 황당하다. 새로운 세상의 장밋빛 전망을 앞장서서 바람 잡아야 할 <조선일보> 같은 신문이 새 세상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자며, 시작도 하기 전에 김부터 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이명박 당선자가 가장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공약들부터 버리고 정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왜? 처음부터 실현 가능한 공약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일보> 같은 신문은 처음부터 안 될 공약을 이명박 후보가 표 때문에 내놓은 줄 뻔히 알면서도 아무 소리도 안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놓고, 이제 와선 '선의의 위약'은 국민들도 이해할 것이니 괘념치 말고 안 켜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게 '편리한' 논리이고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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