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자실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정확한 기원은 없지만 대개 일제시대인 1922년 조선인 언론이 생기고 난 직후부터라고 보는데는 이의가 없다. 당시 일본인 기자와 한국인 기자들이 함께 출입처별로 기자단을 결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김남석, 출입기자단-기자실 제도의 형성과정과 현황, <관훈저널> 2001년 여름호)
당시 결성된 기자단과 기자실은 ‘보도에 대한 정부의 억압에 기자들이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고 한다. 따라서 해당 관공서에 기자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기관이 개방적이냐, 폐쇄적이냐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기자실이 없는 세무서나 지방노동위원회 등이 취재의 사각지대로 놓여 있는 걸 보면 기자실이 국민의 알권리 신장에 기여한 측면도 부인할 순 없다.
중앙부처의 기자실은 해방직후 미 군정 때부터 기원을 삼는다.(팽원순, 현대신문방송보도론, 범우사 1989) 그러나 청와대에 기자실이 생긴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인 박정희 정권 때다. 그 전까지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경무대나 윤보선 대통령의 청와대는 아예 신성불가침 지대였다. 기자들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성역이었던 것이다.
경남의 시·군청에 기자실이 언제 생겼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원로기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중앙부처와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당시 도청은 부산에 있었으므로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기자실은 마산시청 기자실로 짐작된다. 50년대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했던 이순항 경남도민일보 사장은 “당시 마산에는 조선·동아 등 중앙지는 물론 부산일보·마산일보 등 많은 기자들이 마산시청 기자실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당시의 기자들은 지사(志士)적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기자실의 역기능이나 폐해는 별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날 기자실의 대표적인 폐해로 지적되는 폐쇄·배타·독점적 성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였다.
4·19이후 언론자유가 확대되고 기자들의 수가 불어남에 따라 박정희 정권이 이를 통제할 목적으로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제정했고, 청와대 기자실을 설치하면서 출입기자를 청와대가 선임하는 소위 ‘아그레망’ 제도를 관행화시킨 것을 볼 때 기자단-기자실을 자의로 조정하여 언론을 통제하는 데 이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김남석, 위의 글)
또한 1967년 박정희 정권은 정부부처별로 공보관제도를 도입했고, 72년 프레스카드제를 시행하면서부터 지금과 같은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기자실 운영방식이 확립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발급하는 프레스카드를 가진 사람만 관공서 출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때부터 기자실은 독재정권이 언론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영해온 측면이 짙다.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같은 언론통제는 더 강화됐고, 정부의 통제선 안에 들어있던 일부언론과 기자들은 정권이 던져준 당근(특혜)에 길들여졌다.
87년 6·29선언 이후 정권의 노골적인 언론통제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기자실의 성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3공화국 시절부터 비롯된 폐쇄적 운영방식은 출입기자의 범위만 약간 확대된 채 그대로 유지됐다.
현재 경남도내에는 도청과 각 시·군청, 법원·검찰청, 경남경찰청을 비롯한 창원·마산·진주지역의 경찰서에 기자실이 설치돼 있다. 또한 경남농협과 산업단지공단·토지공사·경남은행 등에 기자실이 있고, 신세계백화점도 유통담당 기자들이 잠시 머물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에는 청와대와 각 정부부처·정부투자기관은 물론 대기업도 기자실을 두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역시 청와대기자실이다. 딱 정해진 출입기자 외에는 아예 들어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악관에도 기자실은 있다. 이곳도 역시 청와대 못지않게 폐쇄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브리핑실에는 등록된 기자들(약 2000명)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참여정부는 이런 선택된 자들에게만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기자실을 합동브리핑센터로 확대 개편하여, 과거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기자단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했던 신생·군소 매체에도 공정한 취재 기회를 갖게 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는 신장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기자실 폐쇄가 아닌 취재지원선진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
내용은 알지도 못하고 조중동의 구호에 맞춰 구호를 외치는 국민이 절대다수인 나라가 현재의 한국이라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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