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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상식과 원칙이 뭔지 공감하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 신정아는 선정 언론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언론과 신정아가 결탁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지금의 신정아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언론은 신정아 거짓 신드롬의 공범이다.
이를 밝혀내기 위해 신정아가 금호갤러리에 알바로 취직한 98년인가부터 가짜 박사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07년 7월까지 근 10년간의 행적을 www.kinds.or.kr (언론정보 사이트)에 가서 신정아와 관련된 주요 일간지를 검색해 봄으로서 판단해봤다. (가짜 박사 사건 이후 사건기사들은 제외)
99. ‘타이틀언타이틀노타이틀’전(갤러리)
[문화일보]1998-03-27 16면 문화 뉴스 774자 [문화일보만 검색] [새창보기]
◎한국 현대미술의 미학 한눈에/내달 12일까지 금호미술관현대미술의 장르가 만드는 일체의 경계선을 지워나가며 ‘시각적 아름다움’이라는 공통분모를 추적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100. ‘타이틀언타이틀노타이틀’·‘입맞춤전’/눈길끄는 두 기획전
[동아일보]1998-03-25 31면 문화 기획,연재 1053자 [동아일보만 검색] [새창보기]
◎‘벽’을 깨는 포스트모더니즘/조형언어로 표현한 ‘입맞춤’/‘타이틀…’전현대미술의 자화상 담아/‘입맞춤전’정겹게 그린 뽀뽀 모음‘IMF 중병’을 앓고 있는 미술가. ‘가격파괴’의 바람이 거센...
위에 보는 바와 같이 검색결과 100건이 나왔다.
이 중에서 동명이인 신정아 기사를 제외하면 대략 큐레이터 신정아의 기사는 얼추 70~80건이 된다. 그렇담 신정아가 써준 전시기획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가 소화해 주고 기타 언론 기고들을 실어준 게 해마다 많게는 최소 열 건은 된다는 걸 의미한다.
대략 갤러리들은 분기에 한 번 정도 중요한 전시기획을 갖는다. 그런데 지금의 언론 보도량을 거기에 대비해보면 언론은 10년 동안 꾸준히 신정아가 전시기획을 할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왕창 밀어줬다는 얘기가 된다.
나도 기업의 홍보부서에 한 2년 있어봐서 알지만 이 정도 매체장악력은 거의 홈런수준이다. 그리고 한두 해도 아니고 10년이다. 10년 동안 이런 홍보활동을 벌어왔다는 건 대한민국에 손꼽히는 언론 인맥이 있다는 말이나 다름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해당 분야 (문화부, 미술 담당기자)의 기자들과 상당히 끈끈한 커넥션은 필수적으로 유지했다는 말이 되는 거다.
그렇다면, 신정아에 대한 1차적인 검증 실패 책임에서 현재 언론 역시 하나도 자유롭지 못하는 아주 간단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의 객관적 검증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언론을 이번 사태의 공범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왜 언론은 캔자스시티 대학을 중퇴하고 일개 사기업 갤러리의 (금호갤러리) 알바로 활동하던 신정아에게 도대체 저런 막대한 관심을 보여주면서 전시기획 홍보를 앞다투어 해주었을까? 단순히 금호갤러리의 특수성으로 치부해선 안된다. 당시 금호갤러리는 갤러리 실장도 있었고 알바로 뛰던 신정아 말고 정식 큐레이터도 있었다.
금호갤러리 실장으로 신정아 교수를 금호갤러리에서 처음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했던 박영택 경기대 미대 교수는 신정아 사건의 출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당시 나와 함께 큐레이터 한 명이 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 미술관 측과 갈등이 많았다. 기업 미술관이 대다수 개인화랑을 운영하는 식이나 특정 기업 관련 전시회를 주로 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큐레이터는 고등의 미술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고 큐레이터 자기만의 미술에 대한 인식이 있다. 그러니 오너들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나도 금호미술관을 그만두고, 같이 일하던 큐레이터도 그만 두자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신씨가 갑자기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달고 활동을 시작했다. - 오마이뉴스 -
박교수의 진술대로라면 결국 알바생 신정아를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건 언론이다. 신정아의 대외 홍보활동이 언론과 짝짜꿍을 만들었기에 금호가 만족을 했고 이것이 신정아의 신분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그렇다면 신정아의 거짓 신드롬 원인은 언론의 공모 또는 최소한 미필적 방조 때문이 아닌가?
이제 의혹은 언론의 검증 미비에서 미필적 또는 고의적 방조 의혹으로 넘어간다.
둘째
금호그룹 발표에 따르면 신정아는 예일대학 박사과정에 다닌다는 거짓말을 하다가 2001년 인가 금호 그룹 수뇌부에 그 사실이 들켜 잘렸다고 한다. 퇴사의 이유가 이랬다면 과연 이걸 모르는 관련 기자들이 있었을까?
엄청나게 아껴주던 취재원이 멀쩡히 다니던 갤러리를 잘렸는데…. 금호갤러리에 출입하던 기자들은 퇴사의 사유가 궁금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금호갤러리 측에 사유를 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정아가 예일대 박사과정을 사칭했다는 것을 그 당시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어떤 언론도 이를 기사화 하거나 또는 추후에 설명하지 않았다.
일개 큐레이터 퇴사가 무슨 기삿거리냐고 기사의 가치가 없어서 그랬다는 변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신정아가 금호갤러리를 관두고 다시 쌍용그룹에서 만든 성곡갤러리에서 수석 큐레이터라는 직함으로 본격적 신분상승을 하고 나니, 웬걸 언론들은 더욱더 신정아 띄우기의 기사에 열을 올리고 나섰다는 걸 보면 이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출입처의 취재원이 불미스러운 일로 출입처를 그만뒀는데 다른 직장에 나가게 되었다고 다시 그 취재원을 띄운다? 이게 정상적인 사고로 말이 되나. 게다가 대접도 달라진다. 금호갤러리 때는 언론들은 신정아가 보내는 전시기획 보도자료를 싣는 정도였는데 성곡갤러리에서는 아예 전문가 대담 기사라든지 인터뷰, 문화칼럼 기사를 맡기기까지 했다.
국민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 이 세 곳은 모두 문화칼럼이라는 타이틀로 신정아의 단독 지면 할애라는 파격적인 조치까지 했다. 이때도 신정아는 교수도 박사도 아니었다. 그저 성곡갤러리라는 사기업 갤러리의 큐레이터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는 그런 사람 말이다.
셋째
어이없음의 최종은 지금 "신정아가 가짜 박사다."라고 죽일 년 만들듯 나대는 언론이 당시에는 신정아의 예일대학 박사학위를 인정하고 심지어는 격려하는 기사까지 썼다는 거다. 이건 하도 황당해서 함 그대로 옮겨본다.
큐레이터 신정아씨 “대중 사랑받는 미술관 만들게요.”
[국민일보]2005-05-09 05판 22면 950자 문화 뉴스
신정아(33)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이 오는 14일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국내 큐레이터로는 미술관련 외국박사 1호이자 한국인으로 예일대의 첫 서양미술사 박사가 탄생한 것이다.
미국 캔자스 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공부하고 이 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신 실장은 1997년 금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생활을 시작해 2002년 성곡미술관으로 옮겨 각종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1998년부터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다. “미국을 왔다갔다하는 항공료는 논외로 치더라도 논문작성과 전시기획이 겹치는 때에는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라는 그는 “이렇게 힘들게 박사학위를 따야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라고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신 실장이 제출한 논문은 ‘원시주의의 촉매자 기욤 아폴리네르와 뒤샹, 그리고 피카비아’로 프랑스 시인 기욤의 원시주의 시와 화가 뒤샹 및 피카비아 작품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내용. 미술관 근무경력을 인정받아 일부 과목을 면제받기도 했지만 현지 수업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으며 논문은 최근 1년간 밤잠을 자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첨삭을 받는 방식으로 지도교수( )의 지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전시운영의 전문성을 꾀하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신 실장은 해박한 지식과 발로 뛰는 적극성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한 ‘쿨룩이와 둠박해’,클래식 음악과 미술을 접목한 ‘미술 속의 음악’ 등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전시기획으로 유명하다.
2003년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5명의 다국적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선보인 ‘뉴욕의 다국적 디자이너들’ 전으로 월간미술 대상 전시기획부문 수상자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학위는 받았지만 아직 현장에서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라면서 “이론과 큐레이팅의 접목을 통해 미술관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광형기자
성곡미술관 신정아씨가 전하는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
[동아일보]2005-05-03 40판 20면 1449자 문화 인터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관장 박문순)은 도심 속의 몇 안 되는 미술관이기도 하지만, 100여 종의 나무로 조성된 숲과 산책로가 있는 1000여 평의 공원이기도 하다. 쌍용그룹 창립자 고 김성곤 회장 자택에 1995년 개관한 이 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성곡미술관은 그동안 그룹전 65회(국내전 50회, 국제전 15회), 개인전 77회 등 총 142회의 전시회를 열어 한국화단에 활력을 불어 넣어왔다. 또 본관 별관의 전시장과 함께 조각공원을 만들어 전시장 안팎을 잇는 ‘열린 미술관’을 지향해 온 점도 돋보인다.》
이 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차가움과 따뜻함’(Cool & Warm)전(6월 5일까지·02-737-7650)은 30대부터 60대까지를 아우르는 대표적 작가 19명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전시다. 이기봉 김호득 홍승혜의 회화작품을 비롯해 쓰레기들로 만든 안규철의 움직이는 로봇, 황토색 개 일곱 마리가 관객들에게 머리를 들이밀 듯 달려드는 조덕현의 발굴프로젝트, 윤석남의 살찐 소파, TV 뉴스를 짜깁기해 현실의 허구성을 꼬집는 김범의 영상작품,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를 주제로 만든 김수자의 보이지 않는 거울 등에는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면서 현대미술의 개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는 기획자의 취지가 잘 나타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신정아 학예실장은 “현대미술이라고 난해한 것이 아니다.”라며 “삶과 일상에서 유리되지 않는 차가우면서도 따뜻함이 담긴 전시를 통해 성곡미술관이 추구해 온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미국 캔자스 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공부하고 이 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14일 예일대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는 그녀는 1997년 금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생활을 시작해 2002년 성곡미술관으로 옮겨 일해오고 있다.
신 실장은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밖에서 보면 화려하게 보이지만 전시기획에서부터 예산 조달, 작품 운반, 인쇄물 제작, 전시장에 못 박는 일까지 해야 하는 ‘노가다’”라면서도 “꼭꼭 숨어있는 작가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많은 대중과 만나게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관람객들이 안 올 때 느끼는 허전함과 막막함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보통 전시가 한 달 정도 가는데 관객이 적을 때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요. 영화처럼 시각적 자극이 강하지 않은 미술의 경우 너무 쉬워도 안 되고 너무 어려워도 안 되잖아요. 대중성과 전문성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기획이 가장 어렵습니다.”
신 실장은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술관은 화단의 뿌리이자 토대입니다. 상업적 목적에서 벗어나 대중과 작가를 잇는 미술관들이 활성화될 때, 한 나라의 시각문화가 업그레이드됩니다. 우리나라 미술관들은 재정적으로 너무 취약합니다. 기부문화가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어요.”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신정아의 기사를 특히 주로 다루면서 가짜 박사 사건이 일어나기 전 주로 신정아를 빨아주던 기사를 썼던 그니까 속칭 신정아 언론패밀리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국민일보 이광형/문화일보 신세미/한국일보 하종오/동아일보 허문명
이들은 모두 신정아 관련 전시기획 기사 또는 인물 인터뷰 기사를 최소 5번 이상 썼던 (사건 기사 말고) 기자들이다. 물론 이들이 신정아와 진짜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일선에서 신정아의 언론 피알 활동에 그만큼 노출되어 있었다면 신정아를 충분히 검증할만한 위치에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들도 지금 반성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지금 검증에 소홀했던 언론의 반성은 있는가? 난 한 번도 그런 진지한 반성을 본 적이 없다. 문화일보는 이제까지 속칭 신정아 빨아주기 기사를 젤로 많이 써준 신문이다. 금호, 성곡갤러리 시절 무려 12번 이상을 신정아를 위해 지면 할애를 했다. 어느 신문보다 많다.
그런데 신정아가 금시초문인 것처럼 모르는 체하고 아니 그보다는 아주 무슨 악의 축처럼 몸 로비의 화신으로 묘사하고 누드사진을 신문에 붙였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정아가 그동안 문화일보에 12번 이상 나온 건 문화일보 추정대로 신정아가 문화일보 기자한테 몸 로비를 해서 그런 건가? 나는 이들이 정말 악마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다.
추한 괴물 신정아.
신정아를 한강에 빠뜨려 괴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신정아의 잘못된 지적 허영심을 부추긴 막돼먹은 언론 바로 너희다.
ⓒ j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