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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일까 ver.2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07-09-07 09:46:57
추천수 7
조회수   2,207

제목

종교란 무엇일까 ver.2

글쓴이

김도현 [가입일자 : 2006-03-09]
내용
저는 서울이 고향이고 아버지 사업으로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때 화성시(살인의 추억 아시죠?) 조그만 마을로 이사를 갔습니다. 아담한 시골 마을인데 한 학년에 3반까지 있는 규모 였었죠. 한 학년에 그러니까 150명 정도의 규모 였습니다.

당시 제가 서울에서 전학을 오고 또 세련된 외모와 하이얀 피부로 ㅋㅋ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에게 인기가 좋았었습니다.

영화 속 한장면이군요 -_-;;



한학년 150명 모두가 서로 집이 어디이고 어떤 가정사를 가지고 있는지 다 알 만큼 그런 동네였습니다.

이 초등학생 모두는 또 그 옆에 있는 중학교로 고대로 진학하게 됩니다.

고등학교는 성적에 따라 도시로 진출하느냐 마느냐가 결정 되었죠. 또 자랑입니다만 당시 저는 고등학교 입시 학력고사 200점 만점에 196점을 받고 대도시 명문 모 고등학교 전교 3등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불쾌하시죠? ^^



잼있으시라고 개인史좀 읊어 봤습니다...



지금처럼 화성시 땅 값이 폭등하리라 예상치 못하고 그 전에 땅을 파신 저의 아버지는 종종 식사하시면서 안타까움을 표시 하기도 하십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식견이 그럼 그렇지라며 쏘아 붙이시죠.

아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지금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 입니다.

지금도 물론 아주 절친한데 그 당시 '강'씨 성을 가진 한 친구의 아버님은 한국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화성시 제암리 교회 목사님 이십니다. 일제시대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갖혀 화형을 당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유명해 졌죠. 회의가 있다고 마을 사람들을 교회에 모아놓고 밖에서 창문과 문을 봉쇄한 후 기름을 뿌려 불질렀다고 합니다. 전동래 할머니라는 돌아가셨지만 산 증인도 계셨구요. 자주 놀러 갑니다.



참 재미있게도 또 한명의 절친한 친구 어머님은 제암리 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조그만 암자 '정인사' 라는 절의 스님 이십니다. 제암리 교회 목사님은 성이 '강'씨 이시고 정인사라는 암자는 스님의 호가 '정인' 이라서 정인사라고 지었다 하시더군요. 처사(절을 돌보는)과 고양주(공양..식사 담당) 그리고 제 친구 이렇게 넷이서 살고 계십니다. 역시 자주 놀러갑니다.



당시 친구들과 교회에선 음악도 듣고 일제시대 역사도 배우고 기도도 드리고 했습니다. 절에선 그 앞에 조그만 냇가가 있어 고기도 잡고(고기 잡았다고 스님한테 혼났지만 ^^;) 맛있는 절밥도 먹고 ...역시 기도도 드렸습니다.



그 절에서의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또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당시 조를 짜서 아크릴판으로 미래의 도시를 만드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저의 조에 절에 사는 친구도 포함 되 있었는데 단 시간에 만들 수 있는 숙제가 아니라서 우리는 그 절에서 하룻밤 지내며 숙제 하기로 입을 모았죠.

절에는 보통 화장실이 멀리 있고 푸세식이라 개인 암자에선 암자 내 '요강'이란 것을 둡니다. 당시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사기로 된 요강이 아니었고 플라스틱으로 된 일명 '빠께쓰' 를 그 대체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밤에 목마를까 주전자에 물도 스님이 챙겨 주셨는데 이 요강과 주전자는 머무는 방문 밖 거실에 있었죠.거실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숙제를 끝내고 새벽에 잠이 들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스님이 주전자를 아주 정성것 설거지 하시더군요.



내용인 즉... 비몽사몽 한 친구가 어둠 속에서 요강을 찾다 주전자가 요강인 줄 알고 볼일을 보았고... 또 한 친구는 그 주전자의 물을 아주 맛있게 먹은 사건 이었습니다. 아침에 전부 배꼽을 잡았죠 ㅋㅋ

꼭 과거 원효대사가 밤에는 아주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해 주었던 맛있는 물이 낮에 알고 보니 썪은 해골물이라 구토를 하고 말았다는.. 즉 모든 것은 마음의 병이란 주제가 생각 나는군요 ^^;



이제 정점에 이르릅니다.



우리들이 전부 친구 였듯 목사님과 스님도 아주 절친하셨는데

서로 왜 불상에 대고 절을 하는지... 신이 있는지 없는지.... 믿음이란 무엇인지... 선교란 무엇인지...

또 개인적으로 왜 당신들은 종교인이 되었는지... 여자의 몸으로 왜 스님이 되었는지... 또 결혼을 하여 파계승이 된 연유는 무엇인지...

아픔과 기쁨의 역사를 저희에게 낱낱히 들려 주셨고 서로 이야기도 나누셨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진행형인데요...



요점인 즉슨



당신들은 각각의 신의 존재에 대하여 믿고 있으나 솔직한 심정으로 의심해 본 것도 사실이다.

이 의심이 내게 다가왔을 때 자신이 종교인이 된 것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회의감에 숨고 싶었고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 부분은 모든 성직자들이 지닌 마음 속 숨겨진 아픔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난 여전히 믿는다.

그게 나의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난 신도들이 선교 혹은 점을 보는 즉.. 예언을 점치는 설교나 행위를 혹은 포교를 요구할 때 비로소 입을 열고 그들을 설득한다. 신은 위대한 선구자로서의 한 지침과 의지의 대상이지 그것이 주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신이 있되 신을 지워야 벽이 없어지고 평화가 온다. 내가 종교인 된 것은 이것을 말해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우리가 표면적이 아닌 의식적(마음)으로도 한치의 불쾌감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것 같다.



종교인이 되어 억울하다 생각한 것은 한가지 있다. 결혼을 하였다해서 여자라해서 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해서 종교계 내에서 사회에서 바라다보는 편견이 그것이다. 종파가 나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이란 것을 그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들이 찾아와 물으면 무엇이다라고 말은 한다.

사랑을 강요하는 행위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



종교는 이 모든 것들을 화합 시키고 때론 자기 자신을 신을 빌어 위로를 얻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종교인 된 것은 이 편견과 불편한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도 든다.

더불어 사랑과 자비의 세계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찾아온 이들이게 교리의 일화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 그들이 미소를 띄우고 조금이라도 홀가분 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



한번에 말씀 하신 내용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오면서 이야기 나누고 느끼고 했던 내용입니다. 목사님은 조금 바쁘셔서 상대적으로 스님보다 이야기 나눌 기회가 적었는데요...



저는 비속인으로써 이 과정에서 이 분들의 기쁨도 보았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이 왠지 더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과연 진정한 성직자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우리가 하는 비판은 어쩌면 이런 분들에게 슬픔을 주기도 하지만 기쁨도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들에겐 사실 비판 자체가 부질 없는 것이고 '正' 이 아니지만

약 200 여국이 넘는 각 국가들에서 보여지는 표면적인 종교의 모습을 성찰해 본다면

확실히 이미 종교는 종교의 기능을 상실한 게 자명하다고 봅니다. 역사를 봐도 그렇죠.



신을 지우라는 말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믿음으로부터 자신을 벗어나라는게 아니라 현실 속에서 믿음을 탐구하고 자기부터 의심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믿음이란게 만들어 진다라는.....

그래서 종교 비판은 의미 있다고 보구요. 그래서 비판은 기쁘기도 하고 슬픈 것 같습니다.



이것은 소수 광신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을 침묵하는 모두가 문제인 것이죠. 침묵은 정말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가장 걸림돌이 아닌가 생각되서 그렇습니다.



오늘도 멋진 음악 들으면서 즐거운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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